심리학이나 기억 연구 쪽에서도 이런 감각을 많이 다루고 있어요. 자전적 기억 연구에서는 감정이 강하게 얽힌 개인적 기억이 현재의 감정 상태와 상호작용하면서 떠오르고, 물건 같은 구체적 단서가 추억을 더 빠르게 불러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해요. 또 사물 애착에 관한 연구에서는 어떤 소유물이 자서전적 기억의 저장소처럼 기능하거나, 정체성의 확장, 위안과 안전의 원천처럼 작동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건 그냥 못 버려”라고 말하는 순간이 완전히 비논리적인 고집만은 아닌 거죠. 뇌와 마음이 기억을 저장하고 꺼내는 방식 자체가 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단서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어떤 물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오래된 장면이 입체적으로 돌아오는 것도 그래서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꽤 인간적인 일이죠. 저는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도 바로 이런 지점에 있었어요. 이 영화에서 센티멘탈 밸류는 단순히 오래된 물건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 전체로 확장돼 보였거든요. 어떤 집은 그냥 부동산이 아니잖아요. 평수, 채광, 역세권, 이런 걸로는 다 설명 안 되는 집이 있어요. 그 안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대화가 남아 있고, 누군가 문을 닫고 나간 방식이 남아 있고, 함께 밥 먹던 사람의 기척이 남아 있고, 말하지 못한 감정이 벽에 한 겹 발라져 있어요. 밖에서 보면 그냥 집인데, 안에서 살아본 사람에게는 ‘그냥’ 집이 아니죠. 어떤 공간은 나를 보호했고, 어떤 공간은 나를 질식하게 했고, 어떤 공간은 내가 더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보관하고 있어요. 그래서 집은 장소이면서 동시에 기억의 구조물이 되기도 해요. 영화 안에서 가족사와 집은 서로를 비추는 관계로 보입니다. 집의 한 부분에 균열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는데, 이건 가족의 균열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공간도 결국 물건처럼 기억의 그릇이 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어쩌면 더 큰 그릇이겠죠. 그릇 하나에는 한 장면이 담길 수 있다면, 집에는 한 시대가 담기니까요.
저는 ‘돌’을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해요. ‘돌’을 모티프로 삼기도 하고 ‘돌’을 재료로 삼기도 하고요. 돌은 참 이상한 존재예요. 가만히 보면 별 의미가 없어요. 그냥 돌이죠. 조경에 쓰이거나 그게 재료가 되어 벽돌이 된다면 그 기능을 부여받게 되겠지만, ‘돌’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죠. 과연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게 가능할까요? 내가 ‘돌’에 시간을 쌓고, 감정을 얹고, 어떤 이야기를 건네기 전까지 돌은 그냥 돌이에요. 저는 이게 늘 흥미로웠어요. 사물은 기능을 가질 수 있지만, 의미는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 의미는 사람이 가져다 놓는다는 것. 결국 우리는 객관적인 세계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덧입혀진 아주 주관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똑같은 골목도 누구에게는 퇴근길이고, 누구에게는 첫 키스한 곳이고, 누구에게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장소예요. 그러니까 세상은 하나인데, 의미의 지도는 사람마다 다 다른 거죠.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비밀 지도 위에서 살고 있는 셈이에요. 지도 앱엔 안 뜨지만 나한테만 표시되는 장소들, 물건들, 냄새들, 계절들. 그런 것들로요.
제가 돌처럼 생긴 작업을 만들고, 섬유로 무언가를 감싸고, 손의 시간을 쌓아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갈 때 늘 느끼는 게 있어요. 아무 의미 없는 것에 내가 머문 시간이 붙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는 거예요. 처음엔 그냥 재료였어요. 실이고, 솜이고, 손이고, 약간의 집착과 약간의 허리 통증이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그냥 재료가 아니게 돼요. 내 마음이 지나간 자국이 생기고, 그날의 컨디션이 묻고, 생각하던 사람이 스며들고, 내가 견디던 시간이 표면에 남아요. 그러면 그건 더 이상 기성품처럼 다루어지지 않아요. 망가지면 속상하고, 쉽게 건네기도 어렵고, 괜히 한 번 더 만져보게 되죠. 누군가는 “예쁜 오브제”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만드는 사람에게는 그게 예쁨 이전에 체류의 기록이에요. 내가 얼마나 머물렀는지, 무엇을 통과했는지, 어떤 감정을 손으로 가라앉혔는지에 대한 기록. 그래서 저는 공예가 참 재밌어요.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서, 거기에 마음을 앉혀 결국 나에게 필요한 어떤 것으로 바꾸는 일이니까요. 효율만 놓고 보면 굉장히 답답한 방식이죠. 솔직히 요즘 세상에 클릭 몇 번이면 다 되는데, 굳이 실을 한 코씩 걸고 앉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에는 그렇게 비효율적인 방식으로만 도착할 수 있는 의미들이 있어요. 마음은 늘 빠른 배송이 안 되더라고요.
가끔은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도 비슷한 것 같아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의 스펙이나 기능을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요. 대체 가능한 조건이면 앱에서 필터 걸고 찾으면 되죠. 그런데 실제로 우리를 붙잡는 건 대체 불가능한 결이에요. 말투, 침묵, 같이 걸은 길, 어이없는 농담, 타이밍 안 맞는 위로, 어느 날 왕창 담아서 반은 남겨버린 마라탕, 별거 아닌데 계속 남는 표정. 사랑도 우정도 가족도 다 그렇죠. 그래서 관계에도 센티멘탈 밸류가 생겨요. 그 사람 자체를 시장 가치로 환산할 수 없듯이, 그 관계에 쌓인 시간을 새것으로 대체할 수는 없어요. 저는 그래서 가끔 관계가 끝난 뒤에도 물건을 못 버리는 마음이 이해돼요. 그건 미련이라기보다, 내가 한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증명하는 작은 증거물일 때가 있으니까요. 아, 내가 이 시절엔 이런 표정으로 웃었구나. 이때는 누군가의 안부가 이렇게 중요했구나. 그런 걸 알려주는 증거물들. 인간은 생각보다 증거를 필요로 하는 존재일지도 몰라요. 기억은 자꾸 흐려지니까, 물건에게 “너는 알고 있지?” 하고 묻는 거죠. 좀 유치하지만. 결국 집 안에 있는 사물들이 다 내 비공식 증인단인 셈이니까요.
문학에서도 비슷한 순간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죠. 프루스트가 마들렌 한 조각의 맛으로 기억의 문이 열리는 장면은 너무 유명하고, 영화나 드라마도 결국 이런 걸 반복해서 보여줘요. 어떤 노래 한 곡이 갑자기 예전 계절을 데려오고, 어떤 냄새가 오래된 방을 통째로 소환하고, 어떤 물건 하나가 사람 하나를 불러내기도 해요. 우리는 늘 현재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현재에 과거의 조각들을 잔뜩 매달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조각들 중 일부는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해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죠. 너무 아파서 못 버리겠는 물건도 있고,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는 공간도 있으니까요. 센티멘탈 밸류가 꼭 따뜻하고 포근한 뜻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건 때로 고통의 가치이기도 해요. 아프지만 소중한 게 있죠. 떠나고 싶은데도 못 놓는 것도 있고요. 이미 끝났는데도 내 안에서는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기억은 상처인데도 유산처럼 남습니다. 인간이 참 이상한 동물인 게, 상처를 없애지 못하면 때로는 그것을 정교하게 보관하는 방향으로 살아가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단어가 좋으면서도 좀 슬퍼요. Sentimental Value. 이 말 안에는 “이건 비싸서 소중한 게 아니야”라는 항변 같은 것도 들어 있고, 동시에 “이걸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분명히 내 삶의 일부야”라는 고백 같은 것도 들어 있어요. 우리는 자꾸 합리적인 사람이 되라고 배우지만, 실제로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건 설명되지 않는 애착일 때가 많아요. 다들 정리하라고 하고, 비우라고 하고, 안 쓰는 건 버리라고 하죠. 물론 맞는 말이에요. 저도 압니다. 집이 넓지 않으니까요. 아주 절실하게 압니다. 하지만 모두가 곤도 마리에가 될 수는 없잖아요? 어떤 것들은 진짜 못 버리겠어요. 그걸 버린다는 건 단지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아니라, 한 시절의 나를 더 이상 현재에 두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요. 정리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작별을 미루는 걸 수도 있죠. 그리고 저는 그 미루는 모습이 꼭 나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인간적인 거죠. 아직 조금 더 곁에 두고 싶다는 것.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기엔 내 마음이 아직 거기까지 못 왔다는 것. 그건 미숙함이라기보다 시간의 속도가 감정마다 다르다는 증거 같아요.
우리가 붙들고 사는 건 언제나 가장 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가장 효율적인 것도 아니고, 남들이 봤을 때 제일 이해하기 쉬운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중요한 건 종종 그렇게 설명되지 않는 것들 안에 남아 있어요.
어떤 컵, 어떤 편지, 어떤 집, 어떤 돌, 어떤 사람, 어떤 계절.
의미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거기에 조금씩 축적해 온 거니까요. 발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쌓아온 거죠.
그래서 저는 오늘도 아무 말 없는 ‘돌’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됩니다. 이건 그냥 ‘돌’이 아니라, 나의 시간이 오래 앉아 있던 자리였구나 하고요.
혹시 지금 주변을 둘러봤을 때, 당신에게 그런 것이 하나 보이나요? 남들은 몰라도 나한테는 유독 큰 의미를 가진 것.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히 소중한 것. 버리려고 들었다가도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게 되는 것.
당신에게는 어떤 것이 그런 존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