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요, 최근에 제 생활이 딱 두 가지 모드로만 굴러가고 있었거든요. 하나는 ‘일 모드’, 하나는 ‘방전 모드’. 일 모드에서는 마감, 피드백, 수정, 또 수정. 구조가 있죠. 근데 방전 모드에서는 구조가 없어요. 그 구조 없는 시간에 제가 뭘 했냐면, 침대에 눕습니다. 폰을 켭니다. “쉬어야지.”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한 시간이 사라져 있어요. 뭔가를 봤는데 기억이 안 나요. 제 눈은 분명히 열심히 일했는데, 제 뇌는 퇴근을 못 했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여가의 함정’이에요. 쉬려고 들어갔는데, 나갈 때는 오히려 더 피곤한 방. 그리고 그 방의 이름이 ‘추천 동영상’입니다. 가끔은 다음 영상이 아니라, 제 인생이 자동 재생되는 느낌까지 들어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몰입의 즐거움》에서 여가를 “기회이자 함정”이라고 말하거든요. 일은 외부가 우리를 밀어붙여요. 해야 하고, 마감이 있고, 성과가 있고, 평가가 있고. 그런데 여가는 반대로 외부가 우리를 놓아버리죠. 그래서 기회예요. 회복도 하고, 재창조도 하고, 마음을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기회. 근데 동시에 위험이에요. 구조가 없으면 그 시간은 자꾸 더 쉬운 쪽으로 굴러가거든요. 사람은 원래 물과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어려운 것에서 쉬운 것으로 흘러요. 알고리즘이 그 물길을 아주 친절하게 만들어 주죠. 《몰입의 즐거움》이 오래된 책인데도, 요즘 읽으면 소름 돋는 부분이 있어요. 여가가 ‘자동으로’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요. 행복은 준비되어야 한다는 말. 결국 여가를 방치하면, 휴식이 아니라 소모가 된다는 거죠.
저는 이걸 영화로 비유하면 한 장면이 떠올라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이 꿈을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하잖아요. 피아노 앞에서 손이 알아서 움직일 때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 연습이 노동 같다가도 갑자기 음악이 자기 자신이 되는 순간이 와요.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몰입이에요.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기술과 도전이 균형을 맞출 때 생기는 최적의 경험”이라고 설명합니다. 쉬운 것도 아니고,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닌 상태에서, 집중이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는 경험. 그런데 우리는 요즘 여가에서 그 균형을 잘 못 만들어요. 너무 쉬운 자극만 먹고 있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한 계획만 세우고 있어요. “올해는 기타!” “올해는 프랑스어!” “올해는 도예!” 그러고는 첫날부터 내가 나를 질타하죠. “왜 이렇게 못해?” 아니, 처음인데요. 해리포터도 호그와트 가자마자 주문 술술 외운 거 아니잖아요.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요. 우리가 흔히 쉬고 싶다고 말할 때,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가 아니라 ‘통제하고 싶지 않다’에 더 가까워요. 일할 때 우리는 계속 통제하잖아요. 집중해야 하고, 선택해야 하고, 말조심해야 하고, 판단해야 하고. 그 통제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뇌는 어느 순간 “나 이제 관리자 모드 그만할래” 하고 파업을 해요. 그럴 때 사람들이 찾는 게 멍때리기고, 산책이고, 뜨개질이고, 설거지고, 운전이고, 러닝이고, 악기 연습 같은 것들이에요. 몸은 움직이는데, 머리는 누가 잡아당기지 않는 상태. 여기서 등장하는 게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MN입니다.
DMN은 이름이 참 오해를 불러요. 디폴트라니까 ‘기본값’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걸 “아무것도 안 할 때 켜지는 뇌”로만 이해하곤 해요. 근데 연구들을 보면 DMN은 그냥 멍이 아니라, 내부 정리 모드에 가깝습니다. 내가 나를 돌아보고, 기억을 꺼내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관계를 재정렬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쪽으로 쓰이는 네트워크요. 그러니까 DMN이 켜진다는 건, 뇌가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가서 매장 정리하는 거예요. 점심 장사 끝나고 셔터 내리고, 재료 확인하고, 저녁 메뉴 계획 세우고, 오늘 들어온 클레임 복기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 있어야 다시 장사가 돌아가죠. DMN이 자기 참조, 자서전적 기억, 마음 방황 같은 기능들과 연결된다는 정리는 비교적 최근 리뷰에서도 반복해서 언급돼요.
근데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생겨요. “그럼 멍때리면 되네?” 싶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DMN은 자동으로 켜지기도 하지만, 요즘 우리의 멍은 너무 자극적입니다. 멍을 때리려다가 자극을 들이마셔요. 특히 폰은 “멍”처럼 보이게 포장된 “외부 입력”이거든요. DMN이 내부 정리 모드라면, 폰은 손님이 계속 들어오는 점심시간이에요. 그러니 뇌가 브레이크 타임을 못 잡죠. 게다가 DMN은 방향 없이 켜지면 반추가 되기도 해요. 혼자 누워서 ‘왜 그때 그 말을 했지’ 무한 재생하는 거, 딱 그거요. 그래서 필요한 건 “무작정 멍”이 아니라, 설계된 무의식이에요. 손은 반복하고, 머리는 놓여나는 상태. 자동화된 취미가 여기서 진짜 세게 등장합니다.
제가 뜨개질을 얘기할 때 사람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해요. “그거 하는 동안 머리 비워져요?” 비워지긴 하는데, 정확히는 ‘비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비워져요. 손이 패턴을 기억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생각이 슬금슬금 딴 데로 가요. 어제 있었던 일, 다음 주 일정, 갑자기 떠오르는 한 문장. 마치 ‘인사이드 아웃’에서 감정들이 머릿속 콘솔을 잠깐 내려놓을 때, 뒤에서 기억들이 정리되는 장면 있잖아요. 그때 뇌는, 표정은 멍한데 내부에서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취미는 ‘딴짓’이 아니라, 뇌가 자기 일을 하게 해주는 환경 세팅이에요.
그리고 이건 제 얘기인데요. 저는 한동안 “생산적인 취미”만 인정했어요. 취미도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남한테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쓸모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독서도 요약을 해야 했고, 운동은 기록을 남겨야 했고, 영화는 꼭 리뷰를 써야 했어요. 취미가 일이랑 손잡고 퇴근을 안 하는 거죠. 그렇게 살면 겉으로는 성실해 보이는데, 속은 계속 타요. 왜냐하면 뇌는 ‘성과 모드’만 켜고 살게 설계되지 않았거든요. DMN이 쉬어야 할 시간까지 성과를 들이밀면, 뇌는 언젠가 복수합니다. 보통 그 복수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로 옵니다. 기분 탓 같지만, 그건 뇌가 “나 지금 고장 나기 직전이니까 제발 그만”이라고 보내는 알림이에요.
얼마 전에 저는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이인아 교수님 인터뷰를 보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가 흔히 “뇌세포는 한 번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잖아요. 근데 최소한 해마의 일부, 특히 덴테이트 자이러스라고 부르는 영역에서는 성인기에도 새 신경세포가 생길 가능성이 계속 연구되고 있고, 동물 연구에서는 운동, 풍부한 환경, 학습 같은 것들이 그 과정과 연결된 결과들이 보고돼 왔다는 이야기요. 물론 인간의 성인 해마 뉴로제네시스는 지금도 연구 방법에 따라 의견이 엇갈립니다. 어떤 연구는 강하게 ‘있다’고 말하고, 어떤 연구는 ‘사람에서는 매우 제한적이거나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죠. 근데 저는 여기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결론이 완벽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뇌는 아직도 ‘변화 가능성’ 위에 있다는 뜻이니까요.
해마 얘기가 나왔으니, 유명한 택시 기사 연구도 하나 떠올려요. 런던의 블랙캡 기사들은 ‘The Knowledge’라는 걸 통과해야 합니다. 도시의 복잡한 길을 외우고, 머릿속 지도를 만들어서 즉흥적으로 경로를 짜는 능력. 그 사람들의 뇌를 MRI로 봤더니, 해마의 특정 부분이 대조군보다 더 큰 차이가 관찰됐다는 연구가 있어요. “뇌도 쓰는 만큼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죠. 저는 이걸 들을 때마다 묘하게 위로를 받아요. 나는 지금 내 일 때문에 뇌를 쓰고 있지만, 내가 원하면 다른 방식으로도 뇌를 훈련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 ‘다른 방식’이 꼭 거창한 공부가 아니라, 취미 같은 일상적 반복일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여기서 오늘의 핵심이 딱 나옵니다. 뭔가 되게 만들려면 지금부터 써야 한다가 결론이에요. 취미를 ‘나중에 여유 생기면’으로 미루는 순간, 그 취미는 평생 “나중”으로 남을 확률이 높아요. 왜냐하면 무의식은 갑자기 생기지 않거든요. 무의식의 자동화는 적금처럼 쌓여요. 하루에 10분씩 넣어야 이자가 붙는 거죠. 갑자기 은퇴하고 시간이 생겼다고, 갑자기 손이 알아서 움직이진 않아요. 은퇴해서 생기는 건 시간이지, 숙련이 아니니까요.
여기서 살짝 철학 얘기를 끼워 넣자면, 저는 “좋은 삶”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좀 웃겨요. 왜냐하면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인터넷에 너무 많거든요. 근데 정작 좋은 삶은 방법이 아니라 리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를 혹사하는 리듬으로 살면, 아무리 좋은 말과 좋은 정보가 있어도 삶은 거칠어져요. 반대로, 내가 나를 회복시키는 리듬이 있으면, 일이 좀 거칠어도 다시 돌아올 힘이 생기죠. 취미는 그 리듬을 만드는 장치예요. ‘나를 잘 돌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억지로 외우는 게 아니라, 손과 몸이 먼저 기억하게 하는 방식.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오늘은 아주 현실적인 처방 3개만 남기고 갈게요.
첫째, 수동 소비형에서 능동 생성형으로 방향을 틀어보는 거예요. 만들기, 조합하기, 기록하기, 연주하기, 손쓰기. 기준은 간단해요. 끝나고 나서 내 안에 남는 게 있나? 작품이 완성되냐를 묻는 게 아니고, 내 몸이 “아, 나 쉬었다”라고 느끼냐를 묻는 거예요.
둘째, DMN을 여는 취미의 조건은 반복과 작은 변주입니다. 반복이 없으면 자동화가 안 되고, 변주가 없으면 지루해서 지속이 안 돼요. 러닝도 그렇고, 요리도 그렇고, 악기도 그렇고, 정원도 그렇고, 뜨개질도 그래요. 손은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데, 오늘의 바람, 오늘의 기분, 오늘의 생각이 조금씩 섞여서 무늬가 달라져요. 그때 뇌는 “아, 이제 관리자 모드 꺼도 되겠다” 하고 손을 놓습니다. 그러니까 어려운 창의성을 억지로 짜내지 말고, 자동화된 손부터 만들면 돼요.
셋째, 10분 규칙. 취미의 최소 단위를 10분으로 잡아보는 겁니다. 주 1회 2시간은, 달력과 싸우다 끝나기 쉽거든요. 근데 매일 10분은 이상하게 들어가요. 양치하기 전에 10분, 커피 내리는 동안 10분, 잠들기 전에 10분. 자동화는 긴 몰입보다 잦은 접속에서 빨리 생깁니다. 그리고 그 10분이 어느 순간 12분이 되고 15분이 되고, 그때부터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의 리듬’이 돼요. 저는 진심으로 묻고 싶어요. 당신의 10분은 지금 어디로 증발하고 있나요.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취미가 뭐예요? 저는 요즘 이 질문이 예전만큼 무섭지 않아요. 대단한 취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답이 ‘멋’이 아니라 ‘관리’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뜨개질해요”라고 말하면, 그게 어떤 사람에게는 귀엽게 들리겠죠. 근데 저한테는 그 말이 “저는 제 뇌에게 브레이크 타임을 만들어줘요”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브레이크 타임이 있어야, 다시 일 모드로 돌아가도 덜 타버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취미를 고를 때 사람들이 은근히 자기 검열을 많이 해요. “이걸 취미라고 말해도 되나?” “이거 너무 유치한가?” “이거 말하면 나 한가해 보이나?” 마치 취미도 면접인 것처럼요. 취미 소개하다가 갑자기 자기소개서 톤이 나오는 순간이 있죠. “저의 취미는 꾸준함을 기반으로 한 러닝이며, 이를 통해 자기관리 역량을…” 네, 멈추세요. 취미는 역량이 아니라 숨구멍입니다. 오히려 취미는 유치할수록, 쓸모없어 보일수록, 뇌가 더 잘 쉬어요. 목적이 약할수록 통제가 풀리니까요. DMN 연구들에서도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어요. 우리가 멍하게 있을 때 떠오르는 ‘자기 생각’이 단순한 잡생각이 아니라, 기억과 의미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과정과 맞물릴 수 있다는 논의들이 계속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취미로 손을 반복시키고, 마음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두는 시간이 쌓이면, 어느 날 갑자기 “아, 그 문제는 이렇게 풀면 되겠네” 같은 연결이 툭 떨어질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이런 순간을 몇 번 겪고 나서, 취미를 ‘시간 낭비’라고 부르는 말이 얼마나 비싼 편견인지 알게 됐어요. 겉으로는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내부에서는 재정비가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이 문장 하나만 남길게요.
여유가 생기면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시작한 사람에게 여유가 옵니다.
오늘 하루 10분만, 당신의 뇌를 쉬게 해주세요.
아셨죠?
그럼, 다음에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