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꾸준함을 오해하고 있었어요. 꾸준함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에너지, 같은 노력을 하는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은… 솔직히 거의 뭐, 도시 전설 같은 그런 거죠. 우리 뇌는 애초에 매일 같은 에너지로 살도록 설계가 되어 있지를 않아요. 뇌가 제일 좋아하는 건 효율, 그러니까 ‘덜 쓰고 비슷하게 얻는 거’예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결심해서 하는 행동은 금방 방전됩니다. 특히 연초처럼 목표가 한꺼번에 몰려올 때는, 전전두엽이 과로사 직전 상태가 돼요. “계획 세웠는데 왜 실행이 안 되지?”라는 질문은, 사실 “내가 어제 4시간 잤는데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는 거지?”랑 비슷한 질문이에요. 당연히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기준을 바꿨어요. ‘행동’을 크게 잡는 대신, ‘단서’를 고정하기로요. 매일 양치 하잖아요. 그쵸? 하시죠? 사람이니까. 그래서 양치 직후를 제 버튼으로 정했어요. 양치가 끝나면, 딱 하나. 스쿼트 3개. 네, 3개요. 너무 적다고요? 맞아요. 민망할 정도로 적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습관이란 게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가’의 증명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상황에서 자동으로 무엇을 하는가’의 기록이더라고요. 강한 습관일수록 “나의 목표”보다 “내가 늘 하던 상황”에 더 자동으로 반응한다는 연구가 있어요. 예를 들어 극장에서 팝콘 먹는 습관이 강한 사람은, 팝콘이 눅눅해도 그 자리에서 계속 먹는다는 실험들이 있거든요. 목표가 아니라, ‘그 장소’가 버튼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목표를 잘 쓰는 사람이 되기보다, 버튼을 잘 설계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양치가 끝나면 스쿼트 3개. 이게 저의 새해 선언입니다. 하찮죠? 그게 포인트예요.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더. 제가 왜 3개로 정했냐면요. 반복된 행동은 점점 “생각해서 하는 일”에서 “그냥 되는 일”로 넘어가요. 뇌 안에서 담당 부서가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전전두엽이 “자, 시작해볼까?” 하고 힘을 쓰는데, 반복이 쌓이면 기저핵 쪽 회로가 “응, 그거 루틴” 하면서 자동으로 처리하는 쪽으로 가요. 그래서 초반에는 ‘성취’가 목표가 아니라, ‘시동 걸기’가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스쿼트 30개는 성취고, 스쿼트 3개는 시동이에요. 시동이 걸리면, 어쩌다 10개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3개 하고 끝나기도 하죠. 근데 중요한 건, 엔진이 매일 한 번씩 켜졌다는 사실이에요. 인간은 생각보다 “켜지는 것”에 약합니다. 한 번 켜지면, 하고 나서 “왜 진작 안 했지?”라고 말해요. 매번.
습관이 생기는 속도도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대요. 어떤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이 같은 행동을 같은 맥락에서 반복했을 때, 자동성이 초반에 확 올라가다가 점점 완만해지는 곡선으로 자랐고, 사람에 따라 18일 만에 거의 습관처럼 되는 사람도, 200일 넘게 걸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누가 말하는 “66일이면 습관 생긴다” 같은 말은, 중앙값을 말하는 것이죠. 저는 그 중앙에 살지 않거든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연구에서 ‘하루 빼먹었다고 해서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다’는 점이에요. 이 얘기가 저는 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빼먹는 날이 있어도, 그게 곧바로 리셋 버튼이 되진 않는다는 거. 우리는 자꾸 ‘완벽’을 디폴트로 두는데, 연구는 ‘대충’ 쪽에 더 가깝게 말해줍니다. 대충이 이긴다.
근데 진짜 못 하겠는 날도 있잖아요. 사람인데요. 그래서 저는 ‘계획’을 하나 더 붙였습니다. “만약 오늘 체력이 바닥이면, 그러면 스쿼트는 3개 대신 스트레칭 30초만 한다.” “만약 퇴근이 너무 늦으면, 그러면 책은 10페이지 대신 한 문단만 읽는다.” “만약 마음이 복잡해서 명상이 싫으면, 그러면 눈 감고 숨소리만 세 번 듣는다.” 이렇게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 두는 거예요. 여기서 핵심은 스스로에게 협박을 안 하는 거예요. 못 하면 벌 주는 게 아니라, 못 하는 날에도 ‘복귀 경로’를 남겨두는 겁니다. 뇌는 선택지가 없으면 반항을 하는데, 선택지가 있으면 “그래, 그 정도면 해줄게” 하고 협상에 들어가거든요. 저는 뇌랑 매일 협상합니다. 협상 잘 하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더라.
사실 우리가 자책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언제냐면, ‘한 번 빼먹었을 때’예요. 3일 하다가 4일째 못 하면, 갑자기 모든 게 끝난 것 같잖아요. “망했다, 역시 난 안 돼.” 이게 바로 금단 위반 효과라고 불리는 건데, 원래는 중독 재발 연구에서 많이 다룬다고 해요. 한 번의 ‘미끄러짐(lapse)’을 ‘완전한 실패(relapse)’로 해석해버리면, 그 다음 행동이 폭주해요. 다이어트 잘 하다가 케이크 한 입 먹고 “아 몰라” 하면서 홀케이크를 반으로 접어 먹어버리게 되는 거죠. 저는 연초 루틴도 똑같다고 봐요. 새벽 기상 하루 놓치고 “난 인간이 아니야” 하면서 이불과 합체해버리는 거. 그래서 저는 문장을 고정해두기로 했어요. “이건 실패가 아니라 미끄러짐.” 그리고 “그럼 버전B로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경 하나만 바꾼다.” 운동화를 현관 앞으로 꺼내놓는다든지, 물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든지요. 내 마음을 바꾸는 것보다, 내 눈앞을 바꾸는 게 더 빠르거든요.
환경 얘기하니까 생각났는데, 제가 예전에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고 침대 머리맡에 책을 두면, 그 책은요… 머지않아 먼지가 쌓이게 되더라고요. 오브제가 되는 것도 같고. 존재감은 있는데 아무도 안 건드리는. 그래서 저는 요즘은 아예 책을 베개 위에 올려둬요. 그러면 누울 때 책을 치워야 하잖아요. 그때 선택지가 생깁니다. “치우기만 할까, 한 페이지라도 읽고 치울까.” 그리고 이상하게도, 한 페이지를 읽게 돼요. 인간은 도덕적으로 고결해서가 아니라, 그냥 귀찮아서 움직입니다. 귀찮음의 방향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돌려놓는 게 꽤 강력해요.
저는 또 하나의 착각을 자주 해요. 주변에 ‘진짜 꾸준한 사람’ 있잖아요. 매일 5km 뛰고, 책 한 권씩 읽고, 도시락 싸고… 그 사람을 보면 갑자기 내가 나를 심판하게 됩니다. 근데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은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냥 동선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퇴근하면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게 ‘생각’이 아니라 ‘생활’이더라고요. 저는 그걸 보고 배웠어요. “나도 의지를 키워야지”가 아니라 “내 동선을 좀 더 잘 짜둬야지.” 그래서 저는 집에 들어오면 휴대폰을 바로 소파 옆에 두지 않기로 했어요. 소파 옆에 두면, 제 뇌는 넷플릭스를 켜는 데에 천재가 되거든요. 대신 충전기를 책상 쪽에 뒀어요. 휴대폰을 꽂으러 가는 김에, 제가 하고 싶은 최소 행동 하나를 하게 만드는 거죠. 이건 도덕이 아니라, 배치입니다.
하나 고백을 하자면, 저는 이번 주에 ‘운동 종목 쇼핑’을 했어요. PT는 너무 비싸고, 필라테스는 예약이 귀찮고, 러닝은 추운데, 수영은 수영복을 사야 하고… 그 사이에 저는 아무 것도 안 했죠.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원하는 건 운동이 아니라, “운동하는 사람의 이미지”였구나. 계획을 세우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죠. 그 다음이 허전하거든요. 그래서 계획을 세우는 쾌감만 계속 사는 거예요. 계획 중독. 이건 정말 위험합니다. 검색만 하다 인생 끝나요. 그래서 저는 친한 친구가 추천해 준 10주 요가 영상을 보고 아침에 정말 잠깐씩 따라해보고 있어요. 이렇게 하다 보면 그 친구랑 요가 매트 들고 아난다 요가를 방문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니체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견딜 수 있다.”
근데 저는 요즘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날씨에서든 살아남는다.” 왜냐하면 ‘왜’는 멋있는데, ‘어떻게’가 없으면 결국 다시 검색으로 돌아가거든요. 철학은 마음을 세워주고, 구조는 몸을 움직여줘요. 둘이 같이 있어야 현실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목표를 ‘구조’로 잡아봤어요. BJ 포그라는 연구자가 제안한 모델이 있는데, 행동은 동기만으로 안 생기고, “할 수 있을 만큼 쉽고(Ability)” “지금 당장 하라는 신호가 있고(Prompt)” “동기가 충분할 때(Motivation)” 이 세 가지가 한 순간에 만나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여기서 동기는 살짝 포기했어요. 제 동기는 연초에만 강하고, 1월 둘째 주부터는 휴가를 가거든요. 대신 쉬운 것과 신호를 잡았어요. 스쿼트 3개는 쉽고, 양치 직후는 신호가 확실하잖아요. 그러면 동기가 조금 부족해도 행동으로 이어져요. 저는 이걸 ‘뇌를 속이는 게 아니라, 뇌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뇌는 칭찬에 약하고, 귀찮음에도 약하거든요.
그리고 “3일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말이 그냥 위로가 아니라, 진짜 전략이 될 수 있어요. ‘새 출발 효과’라는 연구가 있는데, 새해, 생일, 월요일, 한 달의 첫날 같은 시간적 이정표가 사람에게 ‘리셋된 나’의 느낌을 주면서 행동을 시작하게 만든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예 3일을 이정표로 만들기로 했어요. 3일째 되는 날은 평가하는 날이 아니라 재설정하는 날. “이번 3일은 어땠냐”가 아니라 “다음 3일을 더 쉽게 만들려면 뭐 하나를 바꿔보자.” 이런 식으로요. 체크도 OX로 안 해요. OX는 자존심 게임이거든요. 저는 “복귀까지 걸린 시간”을 적습니다. 하루 쉬었으면 24시간, 이틀 쉬었으면 48시간. 숫자가 커지면 웃기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어요. 아, 내가 지금 ‘쉬는 중’이 아니라 ‘미루는 중’이구나.
여기까지 읽고 “그래도 난 새벽 기상 포기 못 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요. 근데 새벽 기상은 특히 체력 이슈랑 직결이잖아요. 수면이 부족하면 집중, 판단, 충동 조절 같은 게 흔들리고, 특히 전전두엽 기반 기능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리뷰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새벽 기상을 의지로 밀면, 뇌는 “응, 그럼 낮에 너의 인지 기능을 가져갈게” 하고 거래를 합니다. 그 거래, 너무 손해예요. 그래서 저는 새벽 기상을 목표로 삼는 대신, 취침 시간을 10분만 당기는 걸로 바꿨어요. 10분이요. 또 민망한 단위죠. 근데 이 민망함이 결국 이깁니다. 큰 결심은 멋있게 무너지고, 작은 결심은 촌스럽게 남아요. 저는 촌스러운 쪽에 걸겠습니다.
제가 돌탑에 대해 자주 얘기하잖아요. 돌탑은 한 번에 쌓지 않죠. 바람 불고, 손 시렵고, 돌이 삐뚤어지면 다시 올리고, 어떤 날은 그냥 돌 하나만 얹고 가요. 뜨개도 똑같아요. 한 코 한 코가 너무 작아서, 그걸로 뭘 만들 수 있나 싶지만, 어느 순간 형태가 나오죠. 저는 올해의 꾸준함을 돌탑처럼 하기로 했어요.
‘완벽한 연속’이 아니라 ‘한 번 더 올리는 능력’. 작심삼일은 실패가 아니라, 돌을 올릴 기회가 3일마다 온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도 돌 하나만 얹어봅시다. 아주 작은 돌로요. 양치 끝나고 스쿼트 3개 같은 돌. 혹은 PDF 1페이지 같은 돌. 혹은 문장 1개 같은 돌.
어차피 이 돌탑은, 한 번에 멋있게 뿅! 하고 만들어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게 목표잖아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요.
당신이 2026년에 쌓고 싶은 돌 하나는 뭔가요?
오늘 올릴 수 있을 만큼만 작은 돌로요.
그리고 혹시 3일 만에 무너져도,
그건 끝이 아니라 리셋입니다.
다음 3일이 또 오거든요.
그럼,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