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그 경계가 너무 커서, 평가 모드가 자동으로 켜집니다. 사람은 경험을 평가할 때 전체를 다 합산해서 계산하기보다는, 유독 강했던 순간과 마지막을 크게 참고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고통 연구에서 유명한 실험도 있어요. 더 오래 고통을 느꼈는데도 마지막이 조금 덜 괴로우면 그 경험을 덜 싫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됐고요. 그러니까 한 해가 전반적으로 괜찮았어도 마지막 한 달이 힘들면 “올해는 힘들었어”로 결론이 나기 쉽고, 반대로 한 해가 좀 엉망이어도 마지막에 좋은 일이 있으면 “그래도 올해 좋았다”로 마무리될 때가 있어요. 연말이 ‘끝’이라는 착각을 강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이 전체를 잡아먹는 거예요.
반대로 새해라는 이정표는 “새 출발할래”라는 동기를 높여 주는 효과도 보고되어 있어요. 시간의 랜드마크가 우리에게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를 나눠 주면서 시작을 쉽게 만든다는 설명이죠. 그래서 새해 다짐이 유행하는 건, 우리가 유난히 유행을 좋아해서만은 아닙니다. 뇌가 그런 선을 좋아하는 거예요. 다만 그 효과가 양날의 칼이에요. 새 출발의 욕망이 커지면, 못한 것도 더 커 보이거든요. 흰 셔츠를 입으면 작은 얼룩도 커 보이는 것처럼요.
저는 올해 연말이 특히 그랬어요. 작업을 하다가도 “이건 올해 안에 끝내야 하는데”라는 압박이 오고, 쉬는 날에도 “쉬는 것도 계획적으로 쉬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죄책감이 올라오고. 이쯤 되면 그냥 코미디예요. 쉬는 걸 쉬지 못하는 사람. 접니다.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너는 쉬는 것도 무슨 계획을 짜냐?” 맞아요. 인정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 목표는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좀 덜 몰아붙이는 기술’이에요. 근데 기술은요, 머리로만 배우면 안 되고 손으로 배워야 하잖아요. 저는 그래서 자꾸 손을 만지작거립니다. 실도 만지고, 종이도 만지고, 작은 물건들을 쌓아 봅니다. 그때 제가 본 게 돌탑이었어요. 누가 강변에 돌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돌탑. 여행지에서 많이 보죠. 돌 하나 올리면서 소원 비는 그거요. 저는 그 앞에서 잠깐 멈췄어요. “아, 누군가의 마음이 여기 쌓였구나.” 근데 가까이 가 보니까 그 돌탑이 거의 무너져 있었어요. 중간이 허물어져서 돌이 옆으로 흘러내려 있었죠. 그걸 보는 순간, 실패를 보는 느낌인데도 이상하게 안심이 됐어요. ‘아예 없는’ 게 아니었거든요. 남아 있었어요. 그리고 그 덕에 기반이 더 넓어지고 돌 틈 사이사이 작은 돌들이 들어가서 더 단단해져 있었어요.
무너진 돌탑은 ‘없어진 탑’이 아닙니다. 흔적이 남아 있어요. 기반이 더 단단해진 상태로요. 누가 돌을 들고, 맞춰 보고, 균형을 잡고, 올려 놓았던 시간. 그 손의 시간이 돌 사이에 다 남아 있어요. 탑이 무너졌다고 해서, 그 시간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무너짐 때문에 “다시 쌓을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생겨요. 심지어 더 단단해진 기반 위에 더 넓고 더 높이 쌓을 수 있죠. 무너짐이 끝이 아니라, 손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신호가 되는 거예요. 저는 그 앞에서 혼자 중얼거렸어요. “그래, 이게 인생이지.” 완성본이 아니라 쌓아 나가는 과정. 제가 공예를 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도 비슷해요. 실을 엮다 보면 매듭이 생기고, 방금 만든 걸 풀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 마음은 약간 찢어지죠. “내가 방금 한 건 뭐가 되는 거지?” 근데 풀기는 후퇴가 아니라 편집이에요. 더 단단한 구조로 가기 위한 재구성. 돌탑도 그렇고, 뜨개도 그렇고, 인생도 저는 그쪽에 가깝다고 믿어요. 한 번에 완벽하게 서는 탑은 거의 없고, 무너지고, 다시 쌓이고, 그러면서 형태가 안정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전체가 ‘쌓인 시간’이에요.
“그래도 달력은 넘어가잖아요. 그럼 끝 맞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달력은 넘어갑니다. 근데 달력은 도구지, 자연이 아니잖아요. 달력이 넘어가면 시간이 사라진다고 느끼는 건, 달력이 너무 잘 만들어져서 그래요.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달력을 ‘넘기지 말고’ ‘쌓아보면’ 어떨까?”
1월이 지나면, 2월로 페이지를 넘기는 대신에, 1월을 그대로 두는 거예요. 그리고 2월을 그 위에 쌓아 올립니다. 3월은 또 그 위에 올리고요. 돌탑 쌓듯이요. 1월, 2월, 3월. 이렇게 달달이 탑처럼 쌓이는 달력. 저는 이 상상을 하다가 혼자 웃었어요. 너무 귀엽잖아요. 달력이 갑자기 돌탑이 되는 거니까. 귀여운데, 또 정확해요. 시간은 원래 그런 식으로 쌓이니까요.
저는 아예 이렇게도 해봤어요. 책상 달력 중에 하루하루 뜯는 거 있잖아요. 보통은 뜯어서 버리죠. 근데 저는 어느 날부터 그걸 버리기 싫어졌어요. “왜 얘만 이렇게 사라져야 하지?”라는 마음이 들어서요. 그래서 뜯은 종이를 작은 상자에 넣고, 한 달이 끝나면 그 상자를 꺼내서 두께를 재 봤습니다. 그렇게 보니까 한 달은 생각보다 두껍더라고요. ‘아무 일도 없었던 달’이라 믿었던 달도요. 종이가 두껍다는 건, 그만큼 날이 있었다는 뜻이잖아요. 하루가 쌓여서 달이 된다는 걸 눈으로 보게 되니까, 연말의 “나 뭐 했지” 하는 자책이 조금 약해졌어요. 달마다 색을 하나 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1월은 푸른색, 2월은 베이지색, 3월은 초록색.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그 달에 내가 버텼던 날, 혹은 내 마음이 조금 나아졌던 날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보는 거예요. 한 해가 끝나면 스티커가 붙은 카드들이 층층이 쌓이겠죠. 저는 이게 리추얼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손으로 하는 작은 의식이 마음의 프레임을 바꿔 주니까요. 시간이 사라진다는 착각을, 손의 감각으로 반박하는 방식. 뜨개를 하는 분이라면 더 노골적으로 할 수도 있어요. 매달 손바닥만 한 ‘조약돌’ 하나를 뜨는 겁니다. 실 색은 그 달의 공기처럼 고르고, 속을 채우는 솜은 그 달에 남은 마음이라 생각하고요. 12개가 모이면, 그게 내 한 해의 돌무더기예요. 누가 보면 그냥 귀여운 소품인데, 나는 알죠. 이건 달력을 넘긴 게 아니라 달을 쌓은 결과라는 걸.
저는 이런 상상을 현실로도 조금 해봤어요. 아예 달력을 만들어 봤어요. 매달 돌을 하나씩 그려 넣고, 그걸 띠지로 엮어서 위로 쌓아 올릴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 봤어요. 뒷면은 비워 두고 스티커를 붙이거나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서 뭔가를 적어 두거나 할 수 있게요. “2월 17일, 나는 결국 뜨개를 시작했다.” “5월 3일, 불안한데도 밥은 먹었다.” “9월 21일,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보냈다.” 되게 별것 아닌 문장들이죠. 그런데 그런 말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면요,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사라진 달’이 아니라 ‘남아 있는 달’로 느껴집니다. 1월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1월이 쌓여 있어요. 2월이 그 위에 또 쌓여 있고. 저는 이걸 만들어 보면서 마음이 좀 차분해졌어요. 끝이 아니라 적층이라는 감각이 생기니까요. 말로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죠? 제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이미지도 올려 둘게요.
이 감각은 철학에서도 비슷하게 다뤄져요. 우리가 측정하는 시간과, 실제로 살아지는 시간은 같지 않다는 이야기. 시간을 공간처럼 조각내어 재려고 할 때 오히려 ‘살아가고 있는 흐름’을 놓친다는 관점이 있죠. 흐름은 서로 스며들고, 이전의 시간이 다음 시간에 남아 있고, 기억이 현재를 계속 두껍게 만든다는 식으로요. 저는 이 말을 좋아해요. ‘현재는 얇지 않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지금의 나는 오늘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 1월부터 12월까지, 아니 그 이전까지의 잔여물로 두꺼워진 존재잖아요.
그래서 연말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내기’가 아니라 ‘쌓인 걸 확인하기’에 가까워져요. 저는 연말이 가까워지면, 거창한 회고 대신 아주 사소한 반복을 떠올립니다. 올해 내가 반복한 행동 하나. 진짜 하찮아도 됩니다. “올해도 나는 따뜻한 차를 많이 마셨다.” “올해도 나는 마음이 복잡할 때 손을 움직였다.” “올해도 나는 어떤 날엔 버티고, 어떤 날엔 무너졌다.” 이게 바로 쌓여 가는 돌이에요. 한 달이 하나의 돌이라면, 그 돌을 내 손으로 한 번 만져 보는 거죠. 그리고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합니다. ‘못한 것’도 같이 쌓아요. 삭제하지 않고요. 다만 ‘돌탑 바깥에 놓는 돌’로 둡니다. 탑 위에 얹기엔 아직 불안정한 돌은 옆에 두잖아요. 언젠가 쓸 수 있게. 그게 미완성의 자리입니다.
연말에 우리를 괴롭히는 ‘못한 것’ 리스트가 왜 그렇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지, 중단된 일이나 미완성된 일이 마음에 남고, 다시 이어하려는 경향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미완성이라서 더 잘 기억된다’는 이야기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 효과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재현이 쉽지 않다는 결과도 보고됩니다. 그래도 ‘중단된 일을 다시 하고 싶어지는 경향’ 자체는 더 일관되게 관찰된다는 분석도 있고요. 그러니까 연말에 미완성 목록이 폭주하는 건, 내가 게으른 인간이라서만은 아닐 수도 있어요. 뇌가 원래 ‘열린 탭’을 잘 못 닫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습니다.
시간 얘기하다 보면, 영화 <어바웃 타임>이 생각나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데, 결국 중요한 건 “이전으로 가서 완벽한 하루를 만들기”가 아니라 “지금의 하루를 제대로 살기” 쪽으로 방향이 바뀌죠. 시간을 편집할 수 있어도, 그 편집이 인생을 지워 주진 않아요. 오히려 남는 게 더 또렷해져요. 사랑이든, 후회든, 나쁜 농담이든, 어쨌든 남습니다. 오늘이 내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오늘이 오늘 위에 계속 ‘쌓이면서’ 사람이 변해요. 마치 하루라는 돌을 계속 올리다 보니 어느 순간 탑의 균형이 잡히는 것처럼요. 시간 여행을 할 수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삭제’로 이해하지 않는 것뿐이죠. 그걸로도 충분히 많은 게 바뀝니다. “올해는 망했다”가 아니라 “올해는 쌓였다.” 이 문장 하나로요.
그러면 ‘새해 다짐’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저는 새해 다짐을 미워하지 않아요. 다만 네온사인을 달지 말자는 쪽이에요. 돌탑 위에 갑자기 네온사인을 달면 그건 좀 별로잖아요. “2026 갓생” 이런 제목을 요란하게 달게 되면, 그 글씨가 떨어지는 순간 사람이 자기를 같이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저는 다짐 대신 규칙을 하나만 둡니다. 크고 멋진 목표 말고, 작고 지키기 쉬운 규칙. 예를 들면 “하루에 돌 하나.” 여기서 돌은 진짜 돌이 아니어도 돼요. 메모 한 줄, 물 한 컵, 실 한 단, 안부 문자 하나. 이런 것들. 규칙은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 갑니다.
그리고 ‘쌓는 달력’은 이 규칙을 도와줘요. 한 달이 끝나면, 그 달의 돌 하나를 올립니다. 그게 뭔지 꼭 공개할 필요도 없어요. 남에게 보여 주기 시작하면 갑자기 또 결산이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건 되게 개인적인 의식으로 남겨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달력 뒷면에 한 달의 무게를 적고, “오케이, 얹혔다” 하고 끝. 심지어 그 달이 최악이어도요. 최악의 달도 돌이 됩니다. 왜냐하면 최악의 달에 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무게니까요.
자, 숨 한번 쉬고요. 이제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아주 간단한 실천 하나만 같이 해볼게요. 지금 종이가 있으면 제일 좋고, 없으면 마음속으로만 해도 됩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을 떠올리면서 “그 달에 내가 반복했던 행동 하나”를 붙여 보는 거예요. 1월은 “버티기”, 2월은 “새로 시작하기”, 3월은 “손 움직이기” 같은 식으로요. 거창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단어가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을 위로 위로 쌓아 올리는 상상을 해 보세요. 달력이 넘어가는 게 아니라, 한 달 한 달이 탑처럼 쌓입니다. 그 탑의 모양이 예쁘지 않아도 돼요. 돌탑도 원래 삐뚤삐뚤하잖아요. 중요한 건, 쌓였다는 사실이에요.
시간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달력을 넘기면 사라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는 1월 위에 2월이 쌓이고, 2월 위에 3월이 쌓이고, 그렇게 우리는 한 해라는 돌탑을 만들게 될 거예요. 무너진 부분이 있어도 흔적은 남고, 남았으면 다시 쌓을 수 있고, 다시 쌓을 수 있으면 끝이 아닙니다.
아직도 올해가 끝나 버렸다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정말 끝내야 하는 건 우리가 만들어 낸 ‘끝이라는 착각’이어야 해요.
이어진 시간 위에서 우리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