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구조부터 말해볼게요. 다섯 단계예요. 1단계, 집에 들어오자마자 “복귀 신호”를 보냅니다. 2단계, 오늘의 나를 평가하지 말고 재생해봅니다. 3단계, 손과 몸으로 ‘지금 여기’를 느껴봅니다. 4단계, 문장 두 줄로 오늘의 나를 씻어서 건네줍니다. 5단계, 내일의 나에게 아주 작은 선물 하나를 남깁니다. 이거 다 합쳐도 10분이면 충분할 거고요, 아주 지치고 바쁜 날엔 5분, 어렵지 않겠죠?
먼저 1단계, 복귀 신호. 저는 이걸 물리적으로 합니다. 집에 들어와서 문을 닫으면, 그냥 그대로 문에 등을 살짝 기대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쉽니다. 세 번 반복합니다.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집착륙 완료.” 듣기에는 좀 유치한데, 이게 은근 강력해요. 그리고 혼자 하는 건데 좀 유치하고 오글거리면 어때요? 효과는 보장합니다. 하루 종일 우리는 거의 “비상 모드”로 움직입니다. 머릿속에서 계속 “이거 까먹지 마, 저 사람 표정 이상했어, 저 말 실수 아니야?” 이런 알람이 계속 울리는 상태. 이 시스템이 뇌에서는 교감신경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갑니다. 쉽게 말하면 몸의 경보 장치예요. 이 장치가 너무 오래 켜져 있으면, 집에 와서 누워도 몸이 “아직 위험해, 아직 긴장해야 해”라고 착각하거든요. 근데 깊고 느린 호흡은 이 경보 장치를 수동으로 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숨을 길게 내쉴 때 심장 박동이 조금 내려가고, 근육이 보내는 긴장 신호가 약해지면서, 몸 전체가 “이제 도망 안 가도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거든요. 여기에 매일 같은 자세, 같은 말을 붙이면 뇌는 이걸 하나의 패턴으로 저장해요. “문에 기대서 숨 세 번 + 멘트 = 오늘 전쟁 끝, 안전 구역 진입.” 이런 식이 되는 거죠. 자기 복귀 루틴의 첫 스위치는 꽤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제일 중요합니다. 이 첫 단계만큼은 건너뛰지 말고 꼭 해주세요.
2단계는, 오늘의 나를 다시 한 번 재생해보는 시간이에요. 신발만 벗고, 코트는 옷걸이에 걸어두고, 아직 소파나 침대에 자빠지기 전! 버텨요! 이 상태에서 2분 정도만 씁니다. 여기서 하는 건, 오늘 하루 장면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보는 거예요. 근데 포인트는 “판단” 말고 “편집” 모드로. “오늘 아침에 눈 떴을 때 이미 귀찮음이 60퍼센트 정도 깔려 있었지. 지하철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체력은 이미 반쯤 날아갔고. 오전에 메일 보낼 때는 보내고 나서 다시 열어보고, 다시 닫고, 괜히 한 번 더 확인했네. 점심때는 괜한 농담 하면서 눈치 좀 보였고. 오후 회의에서는 내 목소리보다 다른 사람 얼굴을 더 많이 살폈지. 퇴근길에는 에어팟 끼고, 실제로는 음악도 안 틀고 노이즈캔슬링만 해둔 채로 그냥 멍하게 앉아서 창밖만 봤구나.” 이런 식으로요. 여기서 절대 금지어는 “아, 왜 그랬냐”, “진짜 왜 이 모양이냐” 같은 문장입니다. 그건 이미 하루 끝나고 들어온 나를 또 한 번 혼내는 거라서, 복귀 루틴이 아니라 2차 전쟁이 돼버려요. 이 단계의 목표는 오직 하나예요.
“오늘 하루 내가 어떤 장면들을 통과했는지, 그냥 지켜봐주는 것.”
우리 뇌는 이렇게 하루를 한 번 스토리로 다시 정리해주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기억 조각들을 하나의 파일로 묶어서 “오늘”이라는 폴더에 넣기 훨씬 쉬워져요. 그리고 그렇게 정리된 날은, 밤에 덜 기어나옵니다. 마치 편집 끝난 영상은 자꾸 손대지 않게 되는 것처럼.
3단계는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오는 시간이에요. 저는 여기서 항상 “손”을 쓰거든요. 따뜻한 머그컵에 물이나 차를 한 잔 따라요. 그리고 양손으로 머그컵을 감싸 쥐고, 3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그 느낌에만 집중합니다. 손바닥에 닿는 온도, 손가락이 느끼는 곡선과 무게, 표면의 질감, 위로 올라오는 따뜻한 김, 코 안으로 스며드는 향. 중간에 생각이 툭 끼어들겠죠. “아, 내일 그거 어떻게 하지”, “오늘 그 말 괜히 했다니까.” 그때마다 “아, 또 생각 나왔네” 정도만 알아차리고 다시 손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픽사의 영화 <소울>을 보면, 주인공이 재즈 피아노를 치다가 완전히 몰입해서, 주변이 다 어두워지고 자신만 빛나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와요. 그건 과거도, 미래도, 남의 시선도 아니라, 그냥 건반과 손가락, 소리만 존재하는 세계죠. 물론 우리는 집에 와서 갑자기 그런 무아지경과 같은 몰입의 경지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아주 작은 버전은 만들 수 있어요. 손으로 머그컵을 잡고 있을 때, 코바늘과 실을 만지고 있을 때, 담요를 쓰다듬을 때, 그 순간만큼은 “오늘 한 말 실수”도, “내일 열어볼 메일”도 잠깐 화면 밖으로 사라지고, 오직 지금 이 촉감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뇌 입장에서 보면, 자동으로 걱정과 상상을 재생하는 네트워크 대신, “현재 처리 중인 감각”을 담당하는 회로가 더 활발해지는 시간이에요. 생각의 세계에서 잠깐 빠져나와, 몸이 있는 세계로 돌아오는 것. 자기 복귀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그리고 이제 4단계, 저는 이 부분을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을 떠올리면서 정리해봤어요. 그 책은 흰 것들을 하나씩 불러오죠. 흰 옷, 흰 숨, 흰 눈, 흰 상자 같은 것들. 그 단어들을 따라가다 보면, 사실 그 안에는 아주 진한 상실과 고통이 숨어 있는데, 작가는 그걸 흰 이미지 속에 담아 조심스럽게 건네요. 완전히 깨끗한 채로 남겨두려는 마음이 아니라, 상처투성이였던 무언가를 오랫동안 응시하고, 천천히 씻어낸 다음,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을 만큼의 결을 만들어주는 느낌. 이 단계에서 쓰는 두 줄의 문장도 그와 좀 비슷합니다. 엄청 문학적이고 시적인 문장을 쓰자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 아주 작은 흰 조각을 하나 건네주는 거예요.
첫 번째 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오늘 ______에서 돌아왔다.” 오늘 하루 나를 제일 붙잡고 있었던 걸 적어보는 거예요. “나는 오늘 타인의 기대에서 돌아왔다.” “나는 오늘 비교하는 마음에서 돌아왔다.” “나는 오늘 ‘센 척하는 나’에서 돌아왔다.” 어떤 날은 그냥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에서 돌아왔다”라고 쓸 수도 있을 거예요. 이 한 줄이 하는 일은, 오늘 나를 더럽혔던 것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형태로 꺼내 보는 거예요. “아, 너였구나. 오늘 하루 내 옆에 붙어 있던 게.”
두 번째 줄은 오늘의 나에게 건네는 문장입니다. “오늘의 나에게 한 마디: ______.” “오늘 컨디션으로 여기까지 온 것도 정말 잘한 거야.” “오늘 말실수한 거, 앞으로 10년 뒤에 떠올리면 개그 소재일 듯.” “오늘도 기분은 롤러코스터였지만, 그래도 집에는 잘 도착했다. 이 정도면 성공.” 이건 스스로를 속이려는 낙관이 아니에요. 쓰다 보면, 오늘 나를 가장 많이 찔렀던 말들이 떠오르거든요. “왜 또 그랬냐”, “또 너야?” 같은 말들. 그 대신에 “그래도”를 붙여보는 거예요. “그래도 여기까지 온 너를 나는 본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자기 연민, 자기 자비라는 건 이거랑 비슷해요. “나는 특별해”라고 주문 거는 게 아니라, “이 상황에서 친구에게라면 뭐라고 말해줄까?” 그 문장을 나에게 돌려주는 태도. 연구들을 보면, 자기에게 조금 더 다정한 사람들이 불안이나 우울이 덜하고, 실패했을 때 다시 시도할 확률도 높다고 하거든요. 실패했다고 해서 집에 돌아가서 자기 자신을 부숴버리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도전이 덜 무서워지는거죠. 한강 작가의 <흰>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끝까지 응시하고, 단어라는 형태를 입혀서 조금씩 씻어내듯이, 이 두 줄은 오늘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되, 완전히 버리지 않고 건져내는 작업이에요.
“오늘도 여기까지 온 나를, 이 흰 조각에 담아서 내일의 나에게 건넨다.”
마지막 5단계는 내일의 나에게 아주 작은 선물을 남기는 시간이에요. 1분이면 충분합니다. 진짜 별거 아니에요. 내일 입을 옷을 대충이라도 한 번 꺼내놓기. 책상 위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물건 한 개만 제자리로 보내기. 침대 협탁에 물 한 잔 올려놓기.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해보는 거예요. “내일의 나야, 오늘의 내가 여기까지 깔아놨어. 고맙지?“ 이건 정체성의 감각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줘요. 우리는 보통 미래의 나를 “지금의 내가 미뤄둔 일을 떠안는 불쌍한 존재”로 취급하곤 합니다. “그건 내일의 내가 처리해줄 거야” 하고. 근데 이렇게라도 하나 챙겨놓으면 자고 일어났을 때 이런 감각이 들어요. “어제의 나, 생각보다 괜찮은데?”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안아준 상태로 하루를 넘기는 거죠.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거 한다고 진짜 내 불안이나 과몰입이 달라지는 거야?” 크게 보면 세 가지가 조금씩 바뀝니다. 몸의 경보 시스템, 주의력의 방향,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감각.
문에 기대서 숨을 쉬는 첫 단계는 과열된 경보기에 잠깐 쉬어도 된다고 알려주는 버튼이고, 오늘을 재생하는 두 번째 단계는 하루를 하나의 서사로 묶어서 “이미 끝난 일”로 정리해주는 작업이에요. 손과 촉감에 집중하는 세 번째 단계는, 자동으로 걱정과 상상을 재생하는 채널에서 빠져나와 “지금 여기”로 옮겨놓는 시간이고요. <소울>의 재즈 피아노 씬처럼, 온 신경이 건반과 소리에만 머무르는 그 순간을 아주 작은 버전으로 흉내 내는 거죠. 완전한 몰입이요. 그리고 네 번째 단계는, 오늘 나를 괴롭혔던 것들을 외면하지도, 덮어버리지도 않고, 말과 문장으로 천천히 씻어내면서 나에게 다시 돌려주는 작업이에요.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같은 팀이라는 감각을 조금씩 쌓아가는 의식이고요.
이렇게 매일 10분만 투자하면, 당장 불안이 0이 되거나, 과몰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아요. 대신 이런 변화들이 슬며시 생깁니다. 같은 일이 생겨도, 그 생각을 붙잡고 늘어지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어요. “아, 이건 소프트 랜딩 루틴 안에서 다시 만나보자” 하고 예약을 걸어둘 수 있는 거죠. 실수했을 때 바로 자기비난 모드로 들어가는 대신, “오늘 두 줄 쓸 때 이 얘기 해줘야겠다”라는 완충지가 생기고요. 정체성이 흔들리는 날에도, “그래도 나는 밤마다 나한테 복귀하는 사람이야”라는 기준점이 하나 있으면, 남의 시선이 완전히 나를 휩쓸어가진 못해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이렇게 정리합니다. “자기 복귀 루틴”은 대단한 사람 되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냥 이런 말의 구체적인 버전이라고. “야, 오늘 하루 여기저기 찢겨 있던 나야. 이제 그만, 나한테로 돌아와. 내가 안아줄게.” 이걸 몸으로, 손으로, 문장으로, 내일의 작은 선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
이 글을 읽으면서 집으로 가는 중이라면, 오늘 밤에는 한 번만 해보세요. 문에 살짝 기대서 숨 한 번 크게 쉬고, 손으로 따뜻한 것 하나 잡고, 아주 짧은 두 줄을 써보고, 내일의 나에게 물 한 잔 정도 남겨두는 거.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보는 거예요.
“, 오늘도 잘 버텼다. 이제, 나한테로 복귀해.”
그러면 오늘의 우리는,
각자의 이불 속에서,
각자의 마음 이불 속에서,
조금 덜 흩어진 상태로 잠들 수 있을 거예요.
그 정도면, 오늘 하루 충분히 잘 산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