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는 올해, 고마움을 조금 다르게 보려고 해요. “감사해야 할 것”을 찾는 게 아니라, “내 몸이 반응했던 순간”을 찾아보는 방식으로요. 인지심리학에서 감정은 생각보다 몸에 먼저 나타난다고 하잖아요. 심장이 미세하게 빨리 뛴다거나, 어깨 힘이 살짝 빠진다거나, 눈이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장면이 있다거나. 그런 징후들을 기준으로 하루를 다시 되감아 보는 거예요. 그러면 조금 의외의 장면들에서 고마움의 씨앗이 발견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요. 편의점에서 계산하고 나가는데, 알바생이 기계적으로 “안녕히 가세요” 한마디 던져준 그 톤이 왠지 좀 따뜻했다든지. 집에 와서 양말 벗는데, 생각보다 발이 많이 안 시려서 다행이라든지. 택배 상자를 뜯는데, 뽁뽁이가 꽤 많이 들어 있어서 “아, 이거는 나중에 다른 거 포장할 때 쓸 수 있겠다” 하고 혼자 득템한 기분이 든다든지.
뇌과학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이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우리의 뇌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카메라가 아니라, 매 순간 의미를 제작하는 감독 같은 존재라고. 같은 장면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진다는 거죠. ‘고마움’을 돌본다는 건, 내 뇌가 그 장면을 어떤 장르의 영화로 편집할지 살짝 방향을 잡아주는 작업 같아요. 오늘 하필 비가 와서 우산을 안 가져와 젖은 사람이 “아, 진짜 왜 하필 우산 안 가져온 날 비가 오는 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 빗소리가 참 듣기 좋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처럼요. 물론 그 순간에는 전자가 먼저 튀어나오죠. 인간인데. 근데 그 뒤에 0.5초 정도의 틈을 두고, 내 머릿속 감독에게 다른 컷을 한 번 더 제안해 보는 거예요. “이 장면, 혹시 좀 더 포지티브하게 로맨틱한 장면으로도 편집 가능?” 이렇게. 저는 이걸 제 스타일대로 ‘편집 가능한 고마움’이라고 불러보려고 해요. 뜨개질도 비슷하거든요. 한 코가 마음에 안 들면, 거기서 실을 풀어버릴 수도 있고, 그냥 그 코를 품고 다음 코를 이어갈 수도 있어요. 완벽한 무늬만이 반드시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걸, 작업을 통해서 많이 배웁니다. 약간 삐끗한 부분이 전체 패턴 안에서는 오히려 사람이 만들었다는 그 느낌을 만들어줄 때가 있으니까요. 고마움도 그런 것 같아요. “와, 이건 진짜 감사하다!” 이런 것만 골라 담는 게 아니라, “솔직히 그때는 버겁고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그 덕에 내가 여기까지 왔네?” 싶은 순간까지도 뒤늦게 편집해서 고마움의 타임라인에 넣을 수 있는 거죠.
연말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올해의 장면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남산에 올라가서 도심의 야경을 봤던 날도 있었고, 뜬금없이 독감에 걸려서 이불 속에서만 사흘을 보냈던 시간도 있었고, 새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끝나고 나와서 혼자 편의점 김밥으로 자축했던 밤도 있었고요. 어떤 건 정말 반짝거리는 샷으로, 어떤 건 노이즈 낀 화면으로 떠오르는데, 신기하게도 돌아보면 둘 다 고마운 장면이에요. 잘 된 날은 말할 것도 없고, 망한 날은 제 한계를 알려주고, 관계에서 곤란했던 순간은 “아, 내가 이런 걸 힘들어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거를 너무 정확하게 알려주거든요. 그러니까 연말의 고마움은 꼭 “좋았던 것 리스트”만으로 채울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나를 더 알게 해준 것 리스트”여도 충분히 고마움의 다른 얼굴이 되니까요.
문학에서도 고마움은 종종 ‘뒤늦게 도착하는 감정’으로 등장합니다. 하루키 소설 속 인물들은 그 순간에는 잘 모르는 마음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정확한 이름을 얻곤 해요.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가 나오코와 산책하던 숲길에서 들었던 아주 사소한 말들, 그때는 그 의미를 정확히 붙잡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 그 표정이 그 마음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들이 있어요. 와타나베가 처음엔 그냥 젖은 나뭇잎 냄새 정도로 지나친 장면들이, 나중엔 “그날의 공기가 그녀의 불안과 외로움을 모두 품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요. 그때는 단순한 산책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안에 슬픔과 애정과 불안이 겹쳐 있었다는 걸 이해하죠. 감정이 사건보다 늦게 도착하는 하루키식 리듬인데, 고마움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순간엔 그냥 지나간 장면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 그게 고마움이었구나’ 하고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니까요.
저도 올해 그런 식으로 뒤늦게 도착한 고마움이 몇 개 있었어요. 그중 하나는 ‘계속해 보는 나 자신’이었어요. 러닝도 그렇고, 뉴스레터도 그렇고, 팟캐스트도 그렇고, 사실 중간에 관두고 싶었던 시점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뭐라도 꾸준히 한다는 게 이렇게 피곤한 일이었나” 싶은 순간들. 근데 또 이상하게, 끈기 같은 게 제 안에 있더라고요. “아니야, 그래도 이번 달 거까지만 해보자” 하고 스스로를 달래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없었으면 올 한 해의 많은 장면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겠지, 생각하면 그게 제일 고마워요. 못난 나, 귀찮아하는 나, 짜증 내는 나까지 포함해서.
‘고마움’ 하면 떠오르는 다른 장면이 있어요.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이 클레멘타인을 잊기 위해 기억 삭제 시술을 받는 장면이요. 처음엔 아픈 기억만 사라지면 모든 게 가벼워질 거라고 생각하죠. 근데 기억이 하나씩 지워질수록 조엘은 오히려 그 장면들 속에 있던 따뜻함과 숨은 의미를 뒤늦게 발견해요. 싸웠던 순간에도 있었던 애정, 불편했던 날들에 숨어 있던 유대감 같은 것들이요. 결국 가장 지우고 싶었던 장면들이 사라지는 순간에 오히려 “아, 이게 고마움이었구나”라는 마음이 조용히 떠올라요. 고마움이란 게 꼭 밝고 행복한 순간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고, 어떤 감정은 너무 늦게야 이름을 얻는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죠. ‘힘들었다’는 감정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그 옆에 붙어 있던 고마움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저는 요즘 연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한 가지 해보고 있는 게 있어요. 거창한 감사 일기 말고, 그냥 질문 하나예요. “올해, 나를 버티게 한 건 뭐였지?” 이 질문을 던지면, 자연스럽게 고마운 얼굴들이 떠올라요. 가족, 친구, 연인, 동료, 그리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미래의 나까지. 사람뿐만 아니라 장소도 떠오르고요. 동네 카페 구석 자리, 늘 타는 버스, 공원 벤치. 그리고 아주 구체적인 것들. 볕이 잘 드는 작업실 한켠, 가장 자주 쓰는 7호 코바늘, 좋아하는 실, 새롭게 찾은 재료. 이런 것들이 한 해 동안 나를 버티게 해줬다는 걸 떠올리면, 삶이 조금 덜 추상적으로 느껴져요. “나는 사랑받았다”라는 거창한 말 대신, “나는 꽤 많은 것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고 느끼게 되는 거죠.
고마움을 돌본다는 건, 그래서 감정을 예쁘게 포장하는 일이 아니라 ‘지탱’을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세계 안에서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것들’을 중요하게 다뤘는데, 그중에는 엄청난 사건보다 작은 반복들이 훨씬 많이 들어 있었거든요.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 매일같이 주고받는 안부 메시지, 계절마다 꺼내 입는 옷.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세계에 발을 붙이고 서 있게 해주는 장치들이라는 거죠. 고마움은 그 장치들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작업 같아요. “아, 내가 괜히 이 머그컵만 고집하는 게 아니었구나.” “왜 나는 이 길로만 돌아가려고 할까 했더니, 이 길이 제일 예뻐서 그랬구나.” 이런 소소한 고백들.
뇌과학 연구 중에는 이런 것도 있어요. 감사 훈련을 8주 정도 꾸준히 한 사람들의 뇌를 보면, 보상 회로뿐만 아니라 공감과 자기 조절에 관여하는 전전두엽 영역도 동시에 활성화된다는 결과가 있거든요. 쉽게 말하면, 고마움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연습이 우리를 더 너그러우면서도 동시에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뜻이에요. 감정 회복력이 올라가는 거죠. 재밌는 건, 그 고마움이 꼭 엄청난 사건에 대한 게 아니어도 된다는 점이에요. “오늘은 회사에서 아무도 나에게 시비 안 걸어서 고맙다” 같은 것도 충분히 효과가 있다는 거죠. 저는 이 연구를 보고 되게 안심이 됐어요. “아, 나 같은 소소한 인간도 훈련 가능하구나.”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연말 맞이 고마움 루틴을 하나 제안해 보고 싶어요. 일단 종이 하나랑 펜, 아니면 폰의 메모 앱을 켜고요. 제목은 거창하게 쓰지 말고, 그냥 이렇게 써보는 거예요. “올해 나를 지탱해 준 것들.” 그다음에는 카테고리를 아무렇게나 섞어서 써봐도 좋아요. 사람, 장소, 물건, 장면, 심지어 음식까지.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에요. “엄마의 ‘밥은 잘 먹고 사니’라는 카톡.” “회의 끝나고 나서 조용히 물 한 잔 따라준 동료의 손짓.” “실수한 날에도 나를 구독 취소하지 않고 읽어 준 뉴스레터 구독자들.” “주말마다 나를 불러내 준 친구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날, 최소한 양치는 하게 만든 음파 전동칫솔.” “포근한 이불과 베개.” 이런 것들요.
쓰다 보면, 처음에는 “이게 뭐라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슬쩍 풀어지는 지점이 올 거예요.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런 작업을 ‘재구성(reappraisal)’이라고 부르는데, 이미 지나간 사건을 다른 프레임으로 다시 해석하는 기술이에요. 똑같은 한 해인데,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내 삶의 느낌이 달라지는 거죠. 물론, 힘들었던 일들이 마냥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슬펐던 건 슬펐던 거고, 짜증 났던 건 짜증 났던 거고, 그건 그 자체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어요. 다만 그 옆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티게 해 준 것들”을 붙여 넣는 거예요. 감정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옆자리에 고마움을 살포시 앉히는 느낌으로.
당신의 올해는 어땠나요? “올해 어땠냐”는 질문만큼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도 없죠. 좋았던 것도 같고, 별로였던 것도 같고, 그냥 그럭저럭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한 가지는 분명해요.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꽤 많은 선택과 존버의 결과라는 거. 아침마다 일어나기로 한 선택, 최소한 몇 번은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던 선택,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기로 한 선택, 그리고 “그래도 한번 들어볼까” 하면서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 온 오늘의 선택까지. 저는 그 모든 선택들이 고마워요. 왜냐면 그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만든 거니까요.
연말이 되면, 다들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잖아요. 내년에는 더 건강해지자, 돈을 더 모으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자, 자기 개발을 하자. 물론 그런 계획도 좋죠. 근데 저는 그거보다 먼저, 올해의 저에게 “수고했다” 한마디 건네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되게 뻔한 말인데, 정작 실제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거울 보면서 가끔 이렇게 말해요. “야, 너 그래도 꽤 열심히 살았더라.” 처음에는 되게 민망한데, 두세 번 하니까 좀 괜찮더라고요. 이게 바로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간단한 고마움의 인사인 것 같아요. 남에게 하는 감사 표현보다, 내게 하는 감사 표현이 훨씬 강력한데도 이상하게 우리는 그걸 제일 마지막까지 미뤄두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올해, 나를 지탱해 준 것들”을 떠올리면서, 그 가운데 제일 중요한 축을 하나 고르는 거예요. 사람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고, 취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아무리 지겨워도 넷플릭스 끊지 않고 본 내 끈기” 같은 것일 수도 있고요. 그걸 조용히 떠올리면서, 속으로 한마디만 건네 봅시다. “고마워.” 큰 소리 내서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마음속에서 한 번만 또렷하게 말해 보는 거예요.
그 한마디가, 내일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니까요.
오늘도 여기까지 잘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연말 잘 준비해 보죠. 뭐 별거 있겠습니까.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풀릴지, 내년에는 또 어떤 형태의 시즌이 될지는 아직 저도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당신이 이 자리에 있어 준다는 것 자체가 Le Jardin de la Paix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거. 그러니까 너무 거창한 다짐은 잠시 내려놓고, 오늘은 그냥 이렇게만 생각해 봅시다. “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 이 정도면 꽤 잘 살았다.” 그 정도면, 연말 인사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우리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봅시다.
전 이따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멍 때리는 시간을 좀 가져보려고요. 당신도 오늘, 몸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는 일을 하나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같이 숨 한 번 고르고 마무리할게요.
숨 들이마시고,
하나 둘 셋 넷,
숨 내쉽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오늘을 너무 버거워하지 말고
무거운 마음은 살짝 내려놓고
고마움을 그 틈에 잘 끼워 넣어 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