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미리 미리 대책을 세워보자구요.
가을 하늘은 높고 맑고 푸른데, 마음은 이상하게 텅 빈 기분이 들어요. 달력은 수확의 계절이라 말하는데, 내 마음 창고에서는 에코만 울릴 때가 있죠. 이 공허감은 갑자기 찾아온 고장이라기보다 자연의 변화에 우리 몸과 마음이 정직하게 반응하는 신호일지도 몰라요. 낮이 짧아지고 기온과 빛의 각도가 달라지면 세로토닌 합성이 줄고, 멜라토닌 분비 타이밍이 바뀌어 수면 리듬이 달라져 기분도 흔들리기 쉬워요. 별일 없어도 이유 없이 마음이 푹 꺼지는 날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여름의 바쁜 약속과 외출이 줄며 저녁의 빈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한몫하고요. 우리는 그 빈 시간을 흔히 ‘외로움’으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외로움은 한 가지 얼굴만 가진 감정이 아니에요. 누군가와 단절된 결핍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혼자 있음 속에서 자기 자신과 깊이 만나는 집중의 얼굴도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고독을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능력’이라고 했고,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이 방 한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죠. 문제는 혼자 있음 자체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예요. 외로움을 연료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요? 주유기는 밖에 있지만, 우리에겐 몸과 마음이라는 내장된 에너지원이 있어요. 같은 시간을 같은 뇌 회로로 보내더라도 표지판 하나만 세우면 길이 됩니다.
혼자 있을 때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거나 자기를 성찰할 때 켜지는 회로를 ‘기본 모드 네트워크’라고 해요. 이 회로는 아무것도 안 해도 자동으로 돌아가는데, 가만 두면 후회와 걱정으로 과열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방향을 붙여주면 강력한 자원이 돼요. 글쓰기나 만들기, 배우기, 정리하기 같은 삶의 기술들이 그 길에서 태어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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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미리 미리 대책을 세워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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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Available in audio form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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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일곱 가지 표지판은 그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요. 작지만 분명하고, 오늘부터 바로 시행 가능한 것들이에요.
외로움을 연료로 바꾸는 7가지 표지판
- 이름 붙이기
지금 느끼는 감정을 말로 꺼내보세요. “나는 외로워요”, “허전해요”, “답답해요.” 이렇게 라벨을 붙이는 행위만으로도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이 내려간다는 연구가 있어요. 감정의 목줄을 잡는 게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 같은 역할이에요. “아, 이건 가을이 주는 공허함이네. 계절 메뉴가 나왔구나.” 이렇게 가볍게 말해도 뇌는 의외로 진지하게 반응합니다.
- 리듬 만들기
기분은 리듬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걷기, 가볍게 뛰기, 뜨개질처럼 일정한 패턴이 있는 동작은 신경계를 차분하게 하고 전전두엽의 제어 기능을 돕죠. 호흡은 들숨 4초, 날숨 6초를 1분만 반복해보세요. 미주신경이 자극되어 몸이 이완돼요. 고급 스파는 아니지만, 폐가 운영하는 가장 저렴하고 믿을 만한 이완 프로그램이에요.
- 아주 작은 과제
외로움을 이기겠다며 큰 계획을 세우면 오히려 좌절하기 쉬워요. 과제는 작을수록 좋습니다. 밀린 설거지하기, 책상 정리하기, 1000보만 걷기. 작은 완료 신호가 도파민 보상을 부르고, 보상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리듬을 만들어요. 리듬은 결국 기분을 끌고 갑니다. 가을 바람이 빨래를 알아서 말려주는 것처럼요.
- 의미의 페어링
외로움이 올 때만 하는 전용 루틴을 정해두세요. 외롭다 느껴지면 재생목록 A, 비 오는 날엔 B. 혹은 ‘외로움 전용 노트’를 만들어 그때만 몇 줄 기록하기. 감정과 행동을 연결해두면 감정이 행동으로 더 빨리 전환돼요. 자동문 센서처럼요. 저는 외로움이 오면 실 뭉치를 꺼내요. 손이 움직이는 동안 마음이 천천히 풀립니다. 정리도 되고, 목도리도 생기고, 겨울 준비까지 일석이조예요.
- 사회적 최소치
사람은 연결될 때 회복돼요. 꼭 대형 모임일 필요는 없고요. 정서적 체력이 여린 날엔 최소치부터 설계해보세요. 하루 1명에게 메시지 한 줄, 주 1회 10분 통화. 매번 명언을 보낼 필요는 없어요. “오늘 하늘 예쁘네요.” 정도면 충분합니다. 연결은 내용의 화려함보다 빈도로 작동해요. 매일 바르는 수분크림이 낫지, 보름에 한 번 바르는 고영양 앰풀은 소용이 없거든요.
- 감각 열기
외로움은 머릿속에서 소리가 커지는 현상이라, 감각을 바깥으로 열어주면 볼륨이 내려가요. 오감 스캔을 짧게 해보세요. 지금 보이는 색, 들리는 가장 낮은 소리, 손끝에 닿는 표면의 온도와 질감, 공기의 향. 주의를 외부 감각으로 옮기면 기본 모드 네트워크의 과활성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생각의 라디오를 잠시 끄는 거예요. 배경음은 가을 바람이 맡아줄 테니까요.
- 사유의 속도 조절
외로울 때는 생각이 과속하기 쉬워요. 그럴 때 믿을 만한 질문을 꺼내보세요. “지금 이 생각이 사실일까?”, “증거가 있나?”, “이 생각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지?” 이런 질문은 브레이크가 됩니다. 속도를 줄이면 풍경이 보이고, 풍경이 보이면 길이 덜 무섭습니다.
저는 계절이 바뀔 때 한 번쯤, 불 꺼진 방에서 이 표지판들을 차례로 세워요. 먼저 라벨을 붙이고, 손을 움직여 노트를 펼친 뒤 세 줄만 씁니다. 오늘 좋았던 한 가지, 괜찮았던 한 가지, 별로였지만 버틴 한 가지. 이 세 줄이 엉성하지만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주더라고요. 그리고 연락을 보냅니다. “밥 먹었어?” 뻔한 문장인데, 대화는 종종 이런 뻔함에서 피어납니다. 답이 바로 오면 좋고, 안 와도 괜찮아요. 보낸 행위 자체가 나를 세계와 다시 연결해주니까요.
조금 더 근거를 곁들이면, 감정을 언어로 명명하는 행위가 뇌의 경보 시스템을 가라앉힌다는 결과들이 있어요. 날숨을 길게 내쉬는 호흡은 미주신경을 통해 심박을 안정시키고요. 아주 작은 행동을 완료할 때마다 도파민 보상이 미세하지만 분명히 쌓입니다. 이 작은 사실들이 모이면 ‘나는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뒷받침해줘요. 믿음이 생기면 실천은 덜 막막해지고, 외로움에도 표정이 생깁니다. 너무 정색하면 외로움이 더 정색으로 응수할 때가 있어요. 먼저 미소를 건네보세요. 대체로 한 수 접습니다. 외로움은 의외로 기 싸움에 약하더라고요.
공허는 반드시 부정적인 단어만은 아니에요. 아직 채우지 않은 빈 공간, 다음 것을 만들 준비를 하는 여백일지도 몰라요. 루소는 자연 속 고독을 사랑했고, 릴케는 편지에서 “외로움은 넓다, 그 넓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라고 말했습니다. 정리는 비워내는 작업을 거쳐야 완성돼요. 그러니 지금의 빈자리를 안 좋게만 보지 말고, 공정으로도 보셨으면 해요. 다음 작업을 위한 내부 공정 말이에요.
이번 한 주 동안 스스로 이런 실험을 해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 라벨 노트: 하루에 한 번, 그날 감정을 한 단어로 적고 강도를 1–10으로 표시해보세요. 일주일이면 패턴이 보입니다.
- 리듬 10분: 4초 들숨, 6초 날숨으로 1분, 혹은 1000보 걷기. 생각이 복잡해지는 순간을 잡아당겨 줘요.
- 연결 최소치: 하루 한 명에게 한 문장. 내용은 가볍게, 빈도는 성실하게요.
바다가 방향을 틀 때도 처음엔 아주 조금이듯, 몸과 마음의 관성도 작은 각도로 바뀌어요. 가을 하늘이 공활한 만큼 우리의 내면에도 여백이 생깁니다. 그 여백을 외로움의 적색 경보로만 보지 말고, 연료로 바꿔보면 좋겠어요. 라벨을 붙이고, 리듬을 켜고, 아주 작은 행동으로 방향을 주세요.
연결의 최소치를 챙기고,
감각을 열고,
생각의 속도를 조절해보세요.
그러면 겨울이 오기 전,
마음의 창고에는 작은 불씨들이 하나둘 들어앉을 거예요.
크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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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을 기념하는 원데이 워크숍 보름달을 닮은 자갈 위에 매듭실과 원석, 나무 조각을 엮어 Wrapped Stone을 만들어봅니다. 작은 의식처럼, 소원을 묶고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 일정
9/20 (토) PM 14:00
9/24 (수) AM 10:00
9/27 (토) PM 14:00
10/1 (수) AM 10:00
10/3 (금) AM 10:00
🕰 각 회차 2시간, 소규모 정원(최대 6명) 📍 재료 일체 제공 ✉️ 비용 :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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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fts and Meditation
평화의정원에서는 공예품과 다양한 명상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와 같은 몰입의 경험을 누려보세요.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제품들도 함께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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