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스위스 연구진이 사람들의 전두엽, 그러니까 머리 앞쪽에 있는 ‘브레이크 센터’ 같은 부분을 잠깐 교란시키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 부위를 살짝 꺼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걸 확인해보고자 자기장을 이용해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전두엽에 자기장을 이용해서 저빈도 펄스를 적용해서 전두엽의 스위치를 잠깐 꺼본거죠. 평소엔 ‘조금만 참으면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눈앞의 작은 보상부터 덥석 집어버렸습니다. 즉, 인내심이란 타고난 성품이나 잘 참는 성격, 이런 문제가 아니라 뇌 속에서 작동하는 브레이크 덕분이라는 거예요.
또 다른 실험을 예로 들어보죠.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팀이 생쥐에게 두 개의 레버를 주었습니다. 하나는 누르면 바로 설탕물이 나오고, 다른 하나는 훨씬 더 많이 눌러야 같은 설탕물이 나오는 구조였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쥐들은 힘들게 얻은 설탕물을 더 선호했고, 실제로 ‘더 맛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노력 뒤에 얻은 보상이 뇌에선 진짜로 더 달게 느껴진 겁니다. 이건 우리도 가끔씩 경험하죠. 땀 흘려 열심히 운동을 하고나서 마시는 물 한 모금, 열심히 초집중해서 일하고 나서 취하는 휴식이 훨씬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한 가지 더 얘기해볼게요. 미래를 상상하는 힘에 관한 연구인데요, 함부르크의 연구진이 참가자들에게 ‘미래의 자신’을 아주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했어요. 예를 들어 '1년 뒤 여행 가서 바닷가에 앉아 있는 나'와 같은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게 했습니다. 미래의 나를 생생히 그린 사람들은 눈앞의 작은 보상을 거절하고, 더 먼 미래의 보상을 선택할 확률이 크게 올라갔습니다. 뇌 촬영을 해보니 실제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가치를 판단하는 전두엽이 더 강하게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미래의 장면이 선명할수록 지금의 인내가 길어진다는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달콤한 휴가, 얼마나 달게 느껴지면 이런 단어를 쓰겠어요. 포도나무가 계절을 견디면서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앞으로의 나’를 선명하게 그릴수록 기다림이 가능해집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고난의 계절이 찾아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돌이 많은 땅에 서 있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척박한 환경 속에 던져질 때가 있죠.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왜 하필 나야?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아마 이 질문은 누구나 가슴 속에 품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면, 바로 그 시기가 나를 깊게 만들고, 뿌리를 단단히 내려준 시간이었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수년간의 시험 준비가 그렇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며 책상 앞에 앉아 보내는 밤들이 끝없이 이어질 때는, 그 시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죠. 하지만 합격이라는 결실을 맺는 순간, 그 고된 시간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스스로를 길러낸 자양분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병상에서 보낸 시간이 그렇습니다. 아픈 몸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건 쓰라린 인내지만, 어느 날 계단을 스스로 올라가거나 다시 음식을 맛볼 수 있을 때, 그 작은 회복이 세상 어떤 것보다 달콤한 열매가 됩니다.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오해와 다툼을 견뎌내며 서로를 향한 믿음을 놓지 않을 때, 그 끝에는 더 단단해진 관계라는 열매가 열리죠.
중요한 건, 고난과 인내가 무조건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 안에 가장 풍부한 맛을 만들어냅니다. 거친 돌멩이와 따가운 햇살이 쓰게만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 쓰디쓴 시간을 견뎌야 단맛을 품습니다. 그래서 인내는 단순히 “잘 참아라”는 도덕적 요구가 아닙니다. 인내는 언젠가 내 삶이 더 달콤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붙드는 행위이고, 스스로를 더 큰 열매로 길러내는 시간입니다.
저는 작업하면서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방법을 익히는 과정은 까다롭고, 단번에 대단한 결과물을 낼 수도 없습니다. 하면 할수록 그저 계속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을지,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싶은지, 어떤 의미를 담고싶은지, 그런 고민의 순간들을 이렇게 한번씩 뉴스레터와 팟캐스트로 정리해보는 과정이 저에게는 꽤 도움이 되고있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쌓아나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계속 물을 주고 햇빛을 쬐게 해주고 바람을 맞으며 열매를 키워나가고 있는거라고요. 한 땀 한 땀 바늘을 움직이는 시간이 끝없이 지루해도, 어느 날 무늬가 완성되고 작품이 손에 잡히는 순간, 그 지난한 인내가 달콤한 열매로 바뀝니다.
인내는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우리 뇌와 심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에요. 브레이크를 걸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고생 끝의 보상이 진짜로 더 달게 느껴지고, 미래를 그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가 한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진리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은 보통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이렇게 이 두 문장을 ‘그러나’로 연결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인내는 쓰다. 그러니까 열매가 달지.
혹시 지금, 당신의 삶이 돌이 많은 땅 같나요? 뿌리를 내리기조차 힘들 만큼 괴로운 시기를 지나고 있나요? 그렇다면 꼭 기억하세요. 지금의 이 척박함이, 언젠가 더 풍성하고 깊은 열매를 맺게 할 겁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요. 언젠가 오늘의 인내가 내일의 달콤함이 되어 돌아올 겁니다.
쓰디쓴 인내, 기다림의 연속으로 지친 당신의 포도나무에는
아주아주 풍미가 다채롭고 농축된 맛의 맛있는 포도가 잘 자라고 있을거예요.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인내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 기다림은 이미 달콤한 열매로 바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