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에 대한 몇 가지 연구를 통해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볼게요.
1955년, 심리학자 에미 워너(Emmy E. Werner)와 루스 스미스(Ruth S. Smith)는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신생아 698명을 출생부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약 40년간 추적 관찰하는 종단 연구를 했습니다. 이들은 빈곤, 부모의 정신질환, 가정불화 등 심각한 환경적 역경 속에서 성장한 아동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관찰했습니다. 10명 중 3명은 극심한 빈곤, 부모의 알코올 중독 같은 환경에서도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는 성인이 되었죠.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부모 외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타고난 기질만이 아니라, 환경과 경험이 이 힘을 길러준 겁니다. 마치 식물이 계절과 환경에 맞춰 물과 빛을 조절하며 자라는 것 처럼요.
9·11 테러 이후 뉴욕 시민 2,752명을 조사한 조지 보나노(George A. Bonanno)와 동료들의 연구(2004)도 비슷한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그 끔찍한 사건 뒤에도 10명 중 6~7명은 6개월 이내에 한 개 이하의 PTSD 증상만을 보고했고, 심리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회복탄력성이 일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예외적 특성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심리적 자원임을 입증했습니다. 우리가 마음 근력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입니다.
근력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다 갖고있는 힘입니다. 근력이 아예 없다면 걸어다닐 수도,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살아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에게 기본 탑재된 근력이 존재합니다. 이게 선순환이 안되면 근력이 자꾸 쇠퇴하고 약해지고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바바라 프레드릭슨(Barbara L. Fredrickson)의 확장-구축 이론(Broaden-and-Build Theory)은 바로 이러한 선순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긍정적 정서가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확장시키고, 이러한 확장을 통해 심리적 자원을 구축해서 장기적인 웰빙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입니다. 긍정적인 감정 경험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이는 다시 개인의 기술과 자원을 쌓아 삶의 전반적인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것이죠.
이게 바로 행복의 선순환이에요.
긍정적 정서가 사고와 행동의 폭을 확장시키고, 확장된 사고와 행동은 개인의 심리적 자원을 구축하고, 긍정적 정서로 인한 자원 구축은 다시 또 다른 긍정적 정서를 유발해서 더 큰 긍정적 경험과 자원 구축으로 선순환을 만든다는 것.
- 취미 활동
즐거움을 느끼는 취미 활동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성취감을 얻으며, 이는 다시 긍정적인 감정 경험으로 이어져 삶의 만족도를 높입니다.
- 사회적 관계
긍정적인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고, 이는 다시 사회적 지지 기반을 강화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 업무 환경
긍정적인 업무 환경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환경은 창의적인 사고를 촉진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켜 업무 만족도를 높입니다.
긍정적 정서는 일시적인 즐거움을 넘어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서울대학교 행복 연구 센터는 이 이론을 통해 긍정적 정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자원 구축이 긍정적 정서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될 때 자원이 구축되고 삶의 질이 증가하며, 다시 긍정적 정서가 유발되는 행복의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다르게 말하면 성공이 행복의 원인 아니라, 먼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의 원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늘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이를 위해 ‘낙관적 설명양식’을 훈련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합니다. 낙관적 설명양식이란 긍정적 사건에 대한 시간적 지속성 길게, 공간적 만연성은 크게 사고하고, 부정적 사건에 대한 시간적 지속성은 짧게, 공간적 만연성은 작게 사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농구 경기에서 진 후, ‘나는 농구에 소질이 없어’라고 말하기 보다는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토리텔링의 핵심이에요.
우리가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2가지 방법 중 첫 번째가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뇌는 하루 동안의 경험을 전부 기억하지 않고, 이야기 형태로 재구성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부정적인 해석 습관이 자리 잡으면 작은 사건도 인생 전체를 부정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거죠. 이를 돕는 방법 중 하나가 ABCDE 훈련입니다.
- A(Adversity): 사건
- B(Belief): 그 사건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이유
- C(Consequence): 그로 인한 감정과 행동
- D(Disputation): 반박 – 다른 가능성 찾기
- E(Energization): 긍정적인 에너지 회복
사건(A), 그 사건이 불쾌하다고 믿는 이유(B), 그로 인한 반응(C)을 적고, 기분 나쁜 이유(B)에 대해 반박(D)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차를 긁고 갔어요. 그럼, 차를 긁은 건 나를 무시해서”라는 짐작에 대해 “혹시 그 사람이 전혀 알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긍정적인 해석(E)으로 마무리할 수 있고, 점차 부정적 자동 사고에서 벗어나 더 탄력적인 사고 패턴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운동을 통한 신체 활성화입니다.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것을 넘어, 뇌의 구조와 기능을 직접 바꿔 회복탄력성을 높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인 운동은 해마의 신경세포 생성을 촉진하고,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강화해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대처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이는 항우울제와 비슷한 수준의 효과를 내면서도 부작용이 없어요.
뇌는 움직이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잖아요. 멍게는 내가 살기 좋은 환경, 정착하기 좋은 바위를 찾아다닌다고 해요. 그러다가 알맞는 환경의 바위를 발견하면 정착을 하고 스스로 뇌를 먹어버린다고 합니다. 더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뇌는 움직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움직이면 뇌가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즉,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는 매일 20분 이상 걷기, 주 3회 이상의 유산소 운동, 주 2~3회의 근력 운동을 추천합니다. 그게 좀 지겹다면,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그룹 댄스나 꼭 댄스가 아니어도 몸을 한 번 움직여보세요. 타인의 움직임과 박자에 맞추는 과정에서 뇌의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긍정적인 정서를 강화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모든컴퍼니’에서 진행한 <너나춤춰> 워크숍을 두 차례 참가했는데 굉장히 유명하신 안무가 선생님들과 3시간씩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가졌어요. 처음에는 되게 민망하기도 어색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게 어느 순간 무아지경이 되는거예요. 물론 따라가기 급급해서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었기도 하고요. 저는 아주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와서 그대로 뻗어서 숙면을 했습니다. 너무 피곤했거든요.
제가 하는 또 다른 방법은 스마트폰이나 지갑 등 아무 것도 챙기지 않고 나가서 30분 정도 목적없이 걸어보는 거예요. 익숙한 동네인데도 정처없이 걷다보면 골목골목을 들어가보게 되는데, ‘와, 이런 데가 있었구나’ 하면서 예쁜 골목도 보게 되고, ‘다음에 여기 가봐야지’ 하는 곳도 찾게되더라고요. 주변 풍경을 많이 관찰하면 아주 건강한 자극으로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특정한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따라가보는 것도 추천해요. 수영, 러닝, 클라이밍, 테니스 등등. 신체 활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줄고 사고의 유연성이 높아집니다.
정원을 가꾸며 몸을 쓰는 일도 운동의 한 형태입니다. 삽질, 물주기, 가지치기 등, 모든 동작이 회복의 루틴이 됩니다.
이처럼 스토리텔링의 패턴을 바꾸어 사고를 유연하게 하고, 운동을 통해 신체와 뇌를 동시에 활성화하면, 우리는 역경을 만났을 때 더 빨리 회복하고 심리적으로 한층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바로 마음 근력이 성장하는 것이죠.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그걸 어떻게 해석하고, 또 어떻게 몸을 쓰는지가 곧 ‘나’ 자체가 됩니다. 내가 스스로 움직이고, 경험하고,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게 곧 ‘나' 입니다.
시든 달리아의 꽃대는 잘라내고 병든 잎도 잘라내주고 물주기에도 신경써줬더니 일주일만에 새로운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작업 방향을 잃고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왜 나는 이렇게 고민만 하고 행동하지 못할까 자책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제 푸념이 별 거 아닌 어리광 정도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손톱 아래 박힌 가시가 세상에서 제일 아픈 법 이잖아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잠드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봤어요. 며칠 안 됐지만, 작업실에 가서 대단한 작업에 착수 하지도 못했지만, 이번에도 저는 미루지 않고 뉴스레터도 발행하고 팟캐스트도 올렸습니다.
저 되게 뿌듯해요. 내가 나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써내려가고있구나, 이런 ‘스토리텔링’을 해봅니다. 날씨도 약간은 시원해진 것 같으니 야외에서 러닝도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우리 힘 내보자구요.
내게 수시로 들이닥치는 고난과 역경의 파도를 잘 타고 나가봅시다.
상처를 지나 다시 피어나는 힘,
그 힘을 키우기 위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가꿔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