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보다 중요한 건, 생존이다.
요즘 재난 문자 하루에도 몇 번씩 받으시죠. 폭염 경보를 비롯해서 외출 자제, 야외 활동 자제, 자제해달라는 게 참 많아졌습니다.
‘극단적인 날씨’로 분류됐던 폭염, 열대야, 가뭄과 같은 현상이 이제는 ‘매년 당연히 찾아오는 계절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울의 폭염 일수가 1980년대에는 연평균 7.4일이었던 것이 2020년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20일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유럽, 인도, 중동 등지에서는 인간 생존 한계치에 가까운 체감 온도인 55도라는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사망자가 급증하기도 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3년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만드는 새로운 기후 시스템 안에 우리는 이미 진입했다’고 발표했어요.
최근 ‘뉴노멀’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많이 접하게 되셨을거예요. 기존의 표준이나 일상으로 여겨지던 방식들이 변화하고, 그 변화 이후 새롭게 정착된 상태나 규범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즉, 어떤 큰 사건이나 환경 변화 이후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달라진 기준선을 ‘뉴노멀’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자인 무함마드 엘 에리언(Mohamed El-Erian)이 경기 침체 이후 ‘과거처럼 고도성장은 어려워졌고, 저성장, 저금리, 고위험이 지속될 것’이라는 맥락에서 ‘New Normal’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최근 우리가 겪은 ‘뉴노멀’로는 코로나가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정말 많은 게 달라졌어요. 마스크 쓰는 게 일상이 된 요즘, 그만큼 위생과 방역이 일상화되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재택이나 온라인 수업과 같은 비대면 문화, 온라인/디지털로 소비하는 게 엄청 많아졌어요. 많아졌다는 표현으로는 좀 부족할 정도로 기본값이 된 것 같습니다. 쿠팡의 로켓 배송, 올리브영의 오늘드림, 네이버의 바로 배송처럼 그 서비스도 다양해졌습니다. 빅 마켓으로 분류되던 산업이 사양 산업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고, 어떤 산업은 그 파이가 엄청 커지기도 했어요. 그만큼 기준점이 완전히 달라진거죠. ‘새로운 기본값’이 설정된거예요.
요즘 겪고 있는 폭염 뉴스보면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습니다. 매일 갱신되는 것 같은 역대급 고온 현상, 역대급 열섬 현상, 최장 열대야 기록 등, ‘기상 이변’이 더 이상 ‘이변(anomaly)’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선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우리가 겪고있는 폭염(heatwaves)은 기후위기의 가장 직관적이고 일상적인 징후로 보여집니다.
‘폭염이 뉴노멀화’되면, 그냥 더 더워지겠네, 이런 게 아니라 심각한 현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겪고있는 문제는 건강의 위협입니다. 온열 환자 속출, 사망자 급증과 같은 헤드라인을 단 기사들을 굉장히 많이 접하게 되는데, 특히 체온 조절 능력이 약한 어린이, 고령자, 만성질환자에게 치명적일 것입니다.
폭염이 지속될수록 작물이 자라기 어려워지고 수확량이 떨어지면서, 식량 공급망에 충격을 주게 될 거예요.
저도 올해만큼 에어컨을 이렇게 파워냉방으로 온종일 틀어놓았던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냉방 수요가 엄청 늘어난다는 말인데, 여기에서 취약한 계층, 에너지 빈곤층이 생기기도 합니다. 냉방을 사용할 수 있냐, 없냐가 생존과 직결될 수도 있다니, 너무 충격적이지 않나요?
우리가 코로나 때 ‘뉴노멀’을 겪으면서 배운 것은 그냥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폭염은 더 이상 일시적인 이변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일상입니다. 뉴노멀 시대에는 적응을 넘어서, 근본적인 삶의 방식의 재구성이 필요해요. 이런 시기에는 ‘살아남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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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Available in audio form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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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일 지속되는 폭염에 당연히 시들해지거나 잎이 말라버릴 수 있어요. 그걸 다 막을 수는 없겠죠. 날이 이렇게 더운데, 어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폭염 속 식물을 키우는 핵심 팁을 6가지로 정리해봤어요.
1. 물 주는 시간은 ‘이른 아침’ 혹은 ‘해진 후’
- 한낮에 물을 주면 흙 속 수분이 금세 증발하거나, 뜨거운 물이 뿌리를 데우는 ‘수분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어요.
- 아침 6시 이전 또는 저녁 7시 이후가 좋습니다.
2. ‘겉흙이 말랐다고 무조건 물주지 말기
- 여름엔 물이 금세 마를 것 같지만, 실은 흙 속에는 수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 겉흙이 마른 것처럼 보여도 속은 충분히 젖어있을 수 있고, 이때 물을 더 주면 뿌리 썩음(과습)이 생기기 쉽습니다.
- 가는 나무 꼬챙이 같은 걸로 3~5cm 정도 푹 찔렀다가 꺼내보세요. 흙이 묻어나온다면 물주기는 미뤄도 좋습니다.
3. 직사광선 피하기: ‘그늘막’은 식물의 양산
- 특히 베란다나 옥상에서 키우는 식물은 ‘반그늘’이 생기도록 천이나 발, 커튼 등을 이용해 차광을 해주세요.
- 차광율 30~50% 정도의 그늘막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4. 플라스틱 화분은 특히 주의!
- 열전도율이 높은 플라스틱은 뿌리를 뜨겁게 데울 수 있어요.
- 가능하다면 테라코타나 시멘트 재질 화분으로 교체하거나, 플라스틱 화분을 외부 커버 화분에 넣어 이중 보호를 해주세요.
5. 정원에서는 ‘멀칭(mulching)’ 활용
- 짚, 나무껍질, 코코넛 칩, 바크 등을 흙 위에 덮어주면 수분 증발이 줄고 흙 온도도 낮아집니다.
- 도시 정원사들 사이에서도 여름철 필수로 손꼽는 방법입니다.
6. 잎에 직접 물 뿌리기 ❌
- 특히 해가 쨍쨍한 시간엔 잎에 남은 물방울이 렌즈 역할을 해 잎이 타버릴 수 있어요.
- 통풍이 잘 되는 시간대에만, 잎 뒷면에 미스트처럼 가볍게 뿌려주는 것은 OK.
식물도 요즘같은 폭염에는 자라기보다 쉬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잎이 타지 않도록, 뿌리가 썩지 않도록,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꽃을 피우게 하거나 성장을 유도하기보다, 스트레스 최소화에 집중하세요. 식물을 ‘살린다’는 마인드로요.
“성장보다 중요한 건, 생존이다.”
이 문장은 식물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도 해당되는 말이에요. 우리에게는 저마다 급격하게 변하는 시기가 있어요. 인생의 페이즈가 넘어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오죠. 이럴 때는 새로운 기준점이 필요합니다. 이 시기엔 무언가 이뤄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가 해야 할 건, 내 마음이 너무 뜨거워지지 않게, 뿌리째 말라버리지 않게, 아주 기본적인 생존의 조건을 지켜주는 것, 그게 최우선일겁니다.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단계 이론은 다 아실거예요.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 안전 욕구 - 소속감 - 자존감 - 자아 실현 순의 5단계로 이뤄진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자아실현’이라는 멋진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존이 선행되지 않으면, 자아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장’, 너무 멋진 말이죠. 그런데 정서적인 안정, 관계의 안정, 일상의 안정이 없으면 불가능해요. 폭염이나 폭우와도 같은 외부 스트레스, 경제적인 불안, 정서적 고립 등은 이 기본 욕구를 끊임없이 침식시키고 결국 나를 돌보는 것조차 힘들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자기 조절을 하기 위해서는 인지 자원이라는 게 필요한데, 스트레스로 이미 인지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는 작은 일도 버거워진다고 해요.
미국의 심리학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 (Roy Baumeister)의 ‘Ego Depletion’ 실험은 이런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실험실 안에 갓 구운 초콜릿 쿠키와 무를 올려두었어요. 한 그룹은 쿠키를 먹을 수 있게 허용하고, 다른 한 그룹은 무만 먹으라고 지시했죠. 이후, 모든 참가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퍼즐을 풀게 했습니다. 실제로는 풀 수 없는 퍼즐이었어요. 실험 결과, 쿠키를 먹은 그룹은 퍼즐을 평균 19분 동안 시도한 데 반해, 무만 먹은 그룹은 평균 8분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무만 먹은 그룹은 쿠키를 먹고싶은 욕구를 억제하느라 이미 자기조절 에너지를 소비한 결과였어요. 퍼즐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마주했을 때 집중력과 인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만 것이죠. 의지력은 한정된 인지 자원이고, 이전의 자기통제가 다음 행동의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한 실험이었습니다.
자기 조절은 체력과도 같습니다. 급격하게 달라진 날씨에 적응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쓰이고, 그래서 쉽게 지치는 것처럼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 쉽게 지치게 될 거예요. 생존을 위해 쓰이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이겠죠.
하루만에 책 한 권을 뚝딱 끝내고, 영어 공부를 하고, 운동도 가면 정말 좋겠지만 1년 365일을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과를 내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고 싶겠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생존이 우선이에요. 살고봐야죠.
저는 저한테 이렇게 말해주고싶어요.
“하루를 버티는 것, 이것도 굉장히 어려운 거다. 굉장히 어려운 걸 해냈다.” 이렇게 얘기해주고싶어요.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적어도 나는 나한테 친절하면 좋잖아요. 힘이 되어주면 좋잖아요.
대단한 성과를 내거나 결과물을 내거나 이러지 않더라도 미친듯한 이 폭염을 잘 견디는 거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서적 안전과 조용한 시간, 나 자신을 탓하지 않는 시선, 그 작은 조건들이 있어야 우리는 겨우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 때, 그때서야 자랄 수 합니다.
성장보다 먼저, 생존이 필요한 지금,
오늘 하루도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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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그늘막 만들기
폭염 속 식물에게 ‘그늘막’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각 불안하고 지칠 때는 감정이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이 실천은 트라우마 치료, 감정 조절 훈련에서 실제 활용되는
심상 유도(Imagery-based Intervention) 기법을 바탕으로 합니다.
가장 편안함을 느낀 장소를 떠올려보세요. 꼭 실존하는 장소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상상 속의 숲, 따뜻한 조명 아래의 방, 바람이 부는 해변, 혹은 누군가의 품일 수도 있어요.
1. 색감을 떠올려봅니다
그 공간엔 어떤 색들이 어우러져 있나요? 푸른 하늘, 옅은 베이지의 햇살, 알록달록한 꽃잎.
2. 온도와 촉감을 느껴봅니다
바닥은 딱딱한가요, 부드러운가요? 기온은 따뜻한가요, 서늘한가요? 어디에 몸을 기대고 있나요?
3. 소리와 향을 불러옵니다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어떤 향이 나나요?
잔잔한 음악, 바람 소리, 적막. 장미꽃 향, 빵 굽는 냄새, 낯익은 사람의 체취.
4. 그 안에서 ‘있는 그대로’ 머물기
그 공간에 당신은 혼자일 수도 있고, 아끼는 존재가 함께할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여기 있는 나”에게 집중합니다.
안전한 공간에 머무르면서
변화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주세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당신의 오늘을, 다가올 내일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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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fts and Meditation
평화의정원에서는 공예품과 다양한 명상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와 같은 몰입의 경험을 누려보세요.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제품들도 함께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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