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처음 키울 때, 물은 자주 주면서도 빛은 잘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내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광이 부족하고, 또 직사광선은 해롭다고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직사광선과 직광은 조금 다릅니다. 직사광선은 한낮에 가리지 않고 그대로 내려꽂히는 강렬한 빛을 말하고, 직광은 넓게 보면 햇빛이 직접 닿는 모든 상태를 가리킵니다. 대부분의 실내식물은 ‘반직광’ 혹은 ‘간접광’을 좋아합니다. 얇은 커튼을 치거나, 창으로 들어온 빛이 바닥에 부드럽게 닿는 자리에 두면 충분합니다. 이런 빛조차 부족하면 식물은 ‘도장’이라고 해서 줄기만 길게 자라다가 쓰러지거나 잎이 성기게 나는 모습을 띠게 됩니다.
정원을 가꾸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식물이 햇빛을 받으려 몸을 기울이는 것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란 사실입니다. 잎이 빛 쪽을 향해 돌아가고, 줄기가 조금씩 기울어져서라도 햇볕을 받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사람의 마음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밝은 것만 바라지는 않습니다. 괜히 슬픈 노래를 들으며 일부러 마음을 눌러보고, 어두운 영화를 보며 묘하게 먹먹해지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연민 중심 치료의 창시자인 폴 길버트(Paul Gilbert)는 이러한 태도를 “정서적 포용력(emotional acceptance)”이라고 불렀습니다. 내 안에 올라오는 여러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경험으로 인정할 수 있는 힘. 사실 뇌과학에서도 이처럼 감정을 인정하고 이름 붙이는(labelling)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UCLA 리버모어 교수팀의 연구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MRI 스캐너 안에서 두려운 얼굴을 본 참가자들은 뇌의 편도체, 즉 공포를 담당하는 부위가 활발히 반응했는데, 같은 이미지를 보면서 “무섭다”라고 말로 표현하게 했더니 편도체 활동이 즉시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더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언어로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뇌가 스스로를 다루는 방식이 바뀐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내 감정에게 햇빛을 주는 일을 이토록 두려워하는 걸까요.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면 그것이 더 커질까봐, 혹은 그 감정을 꺼내보는 순간 내가 무너질까봐 겁이 나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들은 우리의 예상과는 정 반대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정서 회피(emotional avoidance)를 자주 하는 사람일수록 만성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더 높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위축되기 쉽다는 결과를 내놓은 것이죠. 마음 속 그늘이 점점 커지고 짙어져 결국 뇌 구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셈입니다.
정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조금 더 쉬워집니다. 햇빛을 받지 못한 화분에는 곰팡이가 쉽게 슬고, 흙은 늘 축축하기만 하다 결국 썩어버립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억누르고 못 본 척 하면 사라질까요? 이런 말도 있죠. 감정을 자꾸 억누르다 보면 곪다 곪다 결국은 터진다고요. 불편한 감정도 햇볕 아래 꺼내두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증발하기도 합니다.
햇빛을 줄 때는 너무 뜨겁지 않도록 시간과 세기를 잘 조절해야 합니다. 식물이 항상 한 방향으로만 빛을 받으면 줄기가 그쪽으로만 기울어져 형태가 불균형해집니다. 그래서 보통 1~2주에 한 번 정도 화분을 살짝 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골고루 빛을 받아 더 튼튼하고 예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직사광선이 무척 강한 시기에는 화분을 그대로 베란다나 야외에 두면 '일소 현상'이라고 해서, 갑자기 강한 햇빛을 받은 잎이 마르고 누렇게 변하다 구멍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한여름에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의 강한 빛을 피하고, 커튼을 치거나 얇은 차광망을 설치해 간접광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을 돌볼 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턱대고 불편한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자신의 상태와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너무 힘들고 버겁다면 조금씩 커튼을 걷듯 서서히 빛에 노출시키는 편이 좋습니다. 아침에 커튼을 살짝 열어 자연광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몸의 세로토닌 분비가 유지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겨울이 다른 나라에 비해 긴 탓에 '일광이 사람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연구가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진행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겨울철 인공 조명만 사용하는 그룹과 자연 채광을 받는 그룹, 이 두 그룹을 비교했을 때, 자연 채광을 받는 그룹의 우울 척도가 평균 22% 낮았다고 합니다. 가끔은 억지로라도 햇볕은 받으러 나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햇빛을 받았는데도 기분이 별로 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불쾌지수가 올라갈 수도 있고요. 기분이 즉시 나아지지 않더라도, 내 마음에도 이런 햇빛 받기를 허락해보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식물 키울 때 햇빛만 잘 들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챙길 것이 꽤 많죠? 이런 수고가 조금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마음을 가꾸는 일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방치하면 금세 시들고, 반대로 너무 강한 것을 한꺼번에 들이밀어도 지쳐버립니다. 그러니 마음도 식물에 햇빛을 주듯 '조금씩, 꾸준히, 부드럽게' 다뤄보면 어떨까요.
정원의 식물도, 우리의 마음도 결국 같은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빛을 받으려고 조금씩 몸을 돌리고, 잎을 펴며, 그렇게 더 단단해지잖아요.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지 말고, 가만히 빛 속에 꺼내두면 생각보다 빨리 스스로 줄기를 세우고 자라나기 시작할 겁니다.
오늘은 집 창가로 화분을 살짝 옮겨보세요. 물은 아침에 충분히 주고, 오후에는 커튼을 드리워 따가운 빛을 조금 걸러주세요. 그리고 내 마음도 살펴보세요. 오늘은 어떤 감정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나요. 그 감정도 그 자리에서 조금씩 빛을 받게 두어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훨씬 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