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째 뽑아야 하는 이유
잡초는 잎만 잘라내면 금방 다시 자라납니다. 눈에 보이는 부분만 없앤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는 정원이라도, 그 아래엔 보이지 않는 뿌리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박힌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내야만 비로소 잡초는 사라집니다.
마음의 상처도 다르지 않습니다. 잊으려 노력하고, 덮어두고, 애써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죠. 오히려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계속해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리를 괴롭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억압된 감정'이나 '회피 행동'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사회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Daniel Wegner)는 '백곰 실험(White Bear Experiment)'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습니다. 참가자들에게 "흰 곰을 절대 떠올리지 마세요"라고 했을 때, 대부분은 오히려 더 자주, 더 강하게 흰 곰을 떠올리게 된 거죠. 억제하려는 생각은 더 강하게 되돌아온다는 '반동 효과(rebound effect)' 때문입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예요. "그 감정은 이제 끝났어",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말할수록, 그 감정은 마음 깊은 곳에서 더욱 강하게 남아 언젠가 '다른 형태'로 터져 나오곤 합니다.
억눌린 감정은 장기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임상 심리학 교수인 조지 보나노(George Bonanno)는 슬픔, 분노, 수치심 같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참는 사람일수록 심장 질환이나 면역 기능 저하 같은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외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그 기억을 '말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척'하고 넘길 경우 자신도 모르게 자기 비난이나 회피적인 관계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러 감정 조절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려는 시도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감정의 강도를 높이고 정신적 고통을 증가시킨다고 해요. 마치 잡초의 뿌리를 잘라내지 않고 잎만 뜯어내는 것과 같죠. 결국 뿌리는 남아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눌러왔던 감정은 결국 '행동'으로 새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사소한 말에 버럭 화를 내고, 중요한 결정 앞에서 망설이며, 가까운 사람에게 이유 없는 차가움을 보이는 것. 그건 부정적인 감정이 자라난 결과이자, 너무 오랫동안 뿌리를 뽑지 못한 흔적일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의 뿌리를 그대로 둔 채 살아가는 것, 그건 잡초가 자꾸 돋아나는 정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잡초 뽑기의 '기술'
그럼, 이 잡초 언제 어떻게 뽑아야 할까요? 잡초는 흙이 촉촉할 때 뽑아야 뿌리까지 쉽게 뽑힙니다. 너무 말랐을 때는 뿌리가 끊어지기 쉽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흙이 질척거릴 때는 오히려 흙과 함께 너무 많은 것이 딸려 나올 수 있어요. 적절한 시기와 방법이 필요하죠. 빨리 해결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뿌리라는 건, 성급하게 캐내려다 더 깊이 박히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뽑아야 할까요?
먼저 있는 그대로 마주해보세요. 그 감정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왜 자꾸 반복되는지, 내 안에서 어떤 모양으로 자라나는지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겁니다. 너무 감정이 격앙되어 있을 때 억지로 파고들기보다는, 어느 정도 마음이 차분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촉촉한' 타이밍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작은 잡초부터 하나씩 뽑아내듯이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맨손으로 뽑기 어려울 땐 호미나 삽 같은 도구가 필요하듯, 마음의 상처를 뽑아낼 때는 명상, 모닝 페이지나 일기와 같은 글쓰기, 그리고 때로는 심리 상담 같은 '도구'들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인지행동치료(CBT)에서는 '인지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이라는 기법을 활용하는데요. 이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유발하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식별하고, 그것을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으로 바꾸는 과정이에요. 즉, 마음속의 '잡초'가 된 생각의 뿌리를 찾아내고, 건강한 생각으로 대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거죠. 이러한 '도구'들은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켜 주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지지대를 마련해 줍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감정의 통합(integrative emotion processing)'이라고 합니다. 억눌렀던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쓸모 있는 기억'으로 바뀐다고 해요. 더는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라난 증거로 남게 된다는 거죠.
당신의 마음 속 정원에는 어떤 잡초가 있나요?
우리는 종종 과거의 상처가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외면합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지나간 일'이 아니라 현재를 좀먹는 '잡초'입니다.
이 잡초를 뽑아내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어요. 때로는 뿌리째 뽑히면서 흙이 뒤집어지기도 하고, 아팠던 기억이 다시 선명해지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라는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마련하게 됩니다.
마음의 잡초를 뿌리 뽑는다는 것은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상처를 인정하고, 들여다보고, 그리고 내가 더 이상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용기 있는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