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감정을 잘 느끼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감정을 인식하지 못했다. 불쑥 올라오는 짜증이나 피로 같은 반응은 있었지만 그것이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 무엇을 말하는건지 알아채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쳤다. 감정은 포커스가 나간 희미한 배경이 되었고, 몸은 습관처럼 움직였다. 그렇게 몇 주 혹은 몇 달이 흘렀을까. 나는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나 자신에게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무감각의 뿌리를 감정에서 찾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감각에서 시작해보기로 했다. 감정은 너무 말이 많다. 나는 말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손을 움직였다. 말하지 않고 만져보는 일, 쥐어보는 일, 헤집어 놓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감각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했다. 손은 흥미로운 기관이다. 언제나 바깥을 향해 있고, 동시에 나에게 가장 먼저 감각을 보내주는 창구다. 나는 매일 다른 재료를 손에 쥐어보았다. 실, 돌, 젖은 나뭇잎, 꽃잎, 나뭇가지, 무게가 느껴지는 금속과 부드러운 천. 눈을 감고 그것을 만지면, 시간의 속도가 느려졌다. 따듯함, 거칠음, 뻣뻣함, 미끄러움, 부드러움. 그 모든 비언어적인 정보들이 어쩐지 감정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떤 감각은 오래 머물고, 어떤 감각은 거부감으로 반응했다. 손으로 만졌을 뿐인데 어느새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감각을 단지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감각이야말로 세계와의 ‘살’ 같은 접점이며, 우리가 사물과 관계 맺는 최초의 방식이라 보았다. “살갗과 세계는 서로 맞닿아 있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감각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건 단지 감정 회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세계와 다시 관계 맺기 위한 방식이었다. 감정은 ‘해석’이지만 감각은 ‘사실’이다. 감각은 언어보다 빠르고, 논리보다 먼저 반응한다.
이후 나는 감각에 단어를 붙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검은 물 아래 고여있던 돌”, “태풍이 지나간 후 짓이겨진 볏짚”,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공기 냄새 같은 것”, “누군가의 무표정한 눈빛” 같은 문장들. 설명이 아니라 감각에 닿는 언어. 말이 아니라 감정의 흔적처럼 다가오는 이미지. 이건 글쓰기와도 비슷했지만, 훨씬 즉각적이었다. 감각을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 안에 머물던 감정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서늘한 안도였고, 예상치 못한 슬픔이었으며, 때로는 아무도 보지 못한 내 안의 상처였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우리는 감각을 통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감각은 뇌의 인지 이전에 먼저 작동하는 신체적 반응이며, 감정은 그 반응을 내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물리적인 것이다. 손에 거친 껍질을 오랫동안 쥐었을 때, 그것이 단지 껍질이 아니라 오래된 두려움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나는 이 연습을 몇 주간 반복했다. 별다른 목적 없이 손을 움직이고, 감각을 기록하고, 내 반응을 들여다보는 일. 점점 더 나는 평소보다 더 섬세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실의 결이 다르게 느껴졌고, 냄새가 더 오래 머물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차이가 분명해졌다. 그건 마치 ‘나’를 다시 알아가는 과정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감각은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말해주었고, 내가 꺼리는 감각은 내가 어떤 것들을 피하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정신치료에서도 감각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불안장애 치료에서는 감각 통합(sensory integration) 기반의 치료가 널리 활용된다. 감정은 말로 다룰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감각은 감정을 우회해서 마음에 도달할 수 있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전 손으로 세상을 탐색하듯, 감각은 감정의 가장 오래된 통로이자 가장 원시적인 언어다. 나 역시 그 방법으로 내 안의 가장 깊숙한 곳을 탐색했다.
지금도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손에 무언가를 쥐어보고, 마음에 반응이 있는지 없는지를 지켜본다. 감정을 읽어내는 건 아직도 어렵지만, 감각을 통해 그것을 느끼는 일은 가능하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인식하는 ‘나’라는 존재는 이전보다 훨씬 선명해진다. 언제나 내 안에 있었지만 놓치고 지나쳐버린 감정, 감각이 그 문을 다시 열어주었다.
살아간다는 건,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작은 감각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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