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향을 잃을 때마다 나는 철학자 에픽테토스를 떠올린다. 그는 말했다. "우리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라." 그의 가르침은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주는 나침반과도 같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주입한다. 더 좋은 집, 더 멋진 옷, 더 높은 위치. 그러나 에픽테토스는 명확히 말한다. 외부의 자극, 타인의 시선, 끊임없이 변하는 유행, 이 모든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내면, 나의 반응뿐이다. 이 가르침은 단순히 철학적 격언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도구다. 나는 나의 삶이 소원들로 가득 찬 목록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소원들은 대부분 나의 것이 아니었다. 광고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이미지, 타인이 보여주는 성공적인 삶. 나는 그것들을 부러워하고, 따라가려 하지만, 그 속에서 깊은 허기를 느낀다.
왜일까? 왜 끊임없이 소원을 채우려 하는데도 만족할 수 없는가? 불행의 원인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에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것에 대한 집착. 그것은 나의 삶을 나 아닌 타인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순간 발생한다. 타인의 인정, 세상의 기준, 외부의 자극. 그것은 나의 통제 밖에 있다.
나는 이런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 실을 엮는다. 실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질문이다. 무엇을 원하는가? 왜 원하는가? 이 욕망은 정말 나의 것인가? 매듭 하나하나가 내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나는 실을 엮으며, 외부의 소원을 벗겨내고, 내면의 진정한 소원에 다가간다. 그러나 소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에픽테토스는 소원이 존재하는 것을 죄악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소원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원이란 단순히 외부의 자극에서 비롯된 욕망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갈망일 수 있다.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본능, 나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외침. 나는 그것을 실로 엮는다.
최근 나는 볏짚, 돌, 나무의 껍질, 흙 같은 원초적인 재료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가공되지 않은 본질 그 자체다. 돌은 그대로 돌이고, 나무는 그 자체로 나무다. 그것들은 스스로 존재하며, 그 자체로 완전하다. 나는 그것들을 만질 때,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나도 그들처럼 그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나의 평화는 나의 내면에 있다." 나는 외부의 자극을 피할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광고에 노출되고, 타인의 삶을 염탐한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나는 평화로울 수 있다. 내 손끝에서 엮여가는 실은 나의 평화를 찾아가는 길이다. 실을 엮는 행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는 훈련이다.
내가 엮어내는 실이나 볏짚과 같은 것은 단순한 공예의 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소원을 형상화하는 매체다. 거친 볏짚이 손끝을 스친다. 나무 껍질의 불규칙한 표면, 돌의 차가운 감촉. 나는 그 재료들을 만지며, 존재를 확인한다. 그것들은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가공되지 않은 본질이다. 볏짚을 엮고, 나무 껍질로 묶고, 돌에 매듭을 엮어가며, 나는 나의 존재를 알아간다. 실을 엮는 과정은 단순히 손의 움직임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다시 짜고 풀어가는 일이다.
어쩌면 나의 소원은 언제나 같았다. 나로서 존재하는 것. 세상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타인의 욕망이 나를 덮어도, 나로서 살아가는 것. 그것은 평안하고 온전한 삶을 소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한 절실함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나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깊은 외침이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 외부의 자극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려는 나의 본질적 외침.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자 한다. 내가 나로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느끼고, 경험하고자 하는 갈망.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소란이 아니라, 내 안에서 조용히 불타오르는 불꽃이다.
소원은 결국 나의 본질이다. 타인이 만들어낸 욕망의 틀을 벗어던지고, 나의 존재 그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갈망. 이번 작업을 통해 나는 그 소원을 다시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내가 나로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느끼고,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 지금도 나는 실을 엮는다. 그 안에 담긴 감정, 갈망이 소원을 통해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질 때까지. 그것은 나의 내면이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자,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를 소원하는 외침이다. 매듭은 반복되고, 무늬는 쌓여가며, 나는 조금씩 내 소원에 가까워진다. 그것은 평화를 바라는 소원일 수도 있고, 살아남기 위한 본능일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실로 엮어 형태를 만들고 소원을 빌어본다.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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