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는 결과로 평가받는다. 그 결과가 좋아야만 자신이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뇌는 반드시 일시적으로 무기력해진다. 이는 ‘인지적 부하’ 때문이다. 낯선 것을 받아들일 때 뇌는 기존 회로로는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잠시 ‘멍청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학습이 시작되는 신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창작은 애초에 실패와 짝을 이룬 행동이다. 무수한 실패를 통과하지 않고선 단 한 줄의 무늬도 완성되지 않는다.
뜨개질은 매번 새롭다. 첫 무늬는 항상 엉망이다. 실수한 자리도, 삐뚤어진 줄도, 처음에는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작업을 이어 나가면, 그 무늬는 어느 순간 그럴싸한 것이 된다.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고, 손의 흔적이 되고, 지우고 싶던 흔적이, 나를 증명하는 자국이 된다.
릭 루빈은 말했다.
“결과는 현상일 뿐이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만들 뿐이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결과는 너무도 중요했다. 작업이 되지 않으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글이 흐르지 않으면 생각마저 말라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오래 멈췄다. 그런데 지금 다시, 손을 움직이며 생각한다. ‘완성’이란 대단한 한 방이 아니라, ‘실패한 초안’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바꾸고, 다시 풀고 엮고 하는 가운데 어쩌다 발견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보면 실패한 초안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완성본이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전조다.
작업은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다시 쓰고 있고, 다시 뜨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이건 분명히, 시작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초안을 가지고 있나요? 생각만 하다 멈춰 있는 프로젝트, 시작하고도 오래 덮어둔 글, 뜨다 만 실, 미루고 있는 말, 망설이는 감정, 한참을 뱅뱅 돌고 있는 선택. 그 어떤 것이든, 그건 이미 빛을 기다리고 있는 그림자일지 모릅니다.
그림자가 있다는 건,
어딘가 반드시
빛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