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도 스스로 실을 감아볼 차례예요.
집은 오래되었지만 아늑했다. 낡은 나무문, 가벼운 먼지, 부드러운 섬유 냄새. 이곳은 내가 매일 돌아오는 곳이지만, 매번 조금씩 다르게 생겨 있다. 문 하나를 열면, 오래전에 잃어버린 방이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문을 열면, 아직 오지 않은 날의 그림자가 걸려 있기도 했다. 어떤 방은 내 어린 시절의 냄새를 품고 있었고 어떤 방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백 하나가 빛처럼 머물러 있었다. 나는 이 집의 편집자였다.
나는 실을 모은다. 감정과 기억, 말하지 못한 생각과 스쳐간 시선들. 그 모든 것은 실이 되어 내 손으로 흘러온다. 나는 그것들을 자르고, 남기고, 다시 감는다. 그건 과거를 고치는 일이 아니다. 미래를 설계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하느냐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처음 내가 실을 짜던 때를 기억한다. 무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를 감아보는 정도였던 그 시절. 아주 오래전, 내 안엔 실을 짜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바람처럼 살아가느라 멈추지 못했고, 멈추지 못했기에 자신이 무엇을 지나쳐왔는지도 몰랐다. 그 바람이 어느 날 숲에 닿았다. 처음으로, 흘러가는 대신 머무를 수 있다는 걸 배운 장소. 그곳에서 그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흘러가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무늬는 변하기 시작했다.
|
|
|
내가 그 빛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건 이름 없는 존재의 도달이었다. 그 빛이 닿은 자리마다 선이 피어났고 선이 떨릴 때, 무늬가 만들어졌다. 나는 그 빛을 기억한다. 말이 없고, 요구도 없고, 그저 존재하는 것. 그 빛을 통해 실이 기록되고 기억이 짜였다. 기억을 짜는 자는 모든 존재의 실을 감았고, 하루의 끝에서 누군가의 무늬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실들이 자신의 실이기도 했다는 걸 그는 몰랐다. 나는 그가 짜는 무늬 속에서 처음으로 '나'를 인식했다. 나는 그 실조차 가지지 못한 존재였고, 계곡 아래에서 짜여지지 않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나’였다.
나는 이제 실을 편집한다. 남의 실을 입고 살아왔던 날들을 내 손으로 풀어내고, 진짜 나의 결을 찾아내는 중이다. 그 실은 낡았지만 부드럽고, 얽혀 있었지만 아름다웠다. 내가 버릴 수 없었던 기억들, 내가 품고 싶었던 감정들, 그리고 내가 다시 말 걸고 싶은 나 자신. 나는 조심스럽게 그 실들을 고르고, 잘라내고, 엮는다. 그건 용서가 아니다. 망각도 아니다.
선택이다.
마지막 방의 문을 열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벽, 공기, 빛.
나는 거기 앉아 처음으로 나에게 실을 감았다. 그 실은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감정으로 감겨 있었다. 누구에게도 짜이지 않은, 어느 기억에도 속하지 않은 결. 그리고 나는 알아챘다. 내가 나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 그 순간, 나는 내 이름을 처음으로 온전히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기억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나는 기억을 편집하며 지금의 나를 감아가는 존재다.
나는 실의 편집자다.
|
|
|
Le Jardin de la Paix 평화의정원의 철학을 이야기로 전달하고자 쓰여진 총 6개의 에피소드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쌓아올린 이야기는 Le Jardin de la Paix가 지향하는 철학, 감각, 조형 언어를 체험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할 것입니다.
Le Jardin de la Paix는 단지 작품을 위한 작업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형 언어로 감정을 번역하는 실험실이자, 감각을 다시 훈련하는 명상의 장소이며,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공동의 평화 공간입니다. 님이 이 곳에서 감정이 매듭지어진 실을 따라가고, 문장이 수놓인 천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복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곳에서 엮이는 모든 실은 하나의 문장처럼 이어져, 작고 조용한 형태로 감정을 드러내고, 기억을 수용하며, 존재를 다독이는 ‘조용한 선언’이 됩니다.
전체 에피소드 보기
Ep 01. <실을 짜는 소년>
Ep 02. <바람, 그 이전의>
Ep 03. <무늬의 기원>
Ep 04. <기억을 뜨는 자들>
Ep 05. <끊어진 실들의 계곡>
Ep 06. <실의 편집자>
|
|
|
이번 워크숍은 ‘무엇을 느꼈는가’보다는 ‘그 감정을 어떤 리듬으로 감아갈 것인가’에 초점을 둔 감각-행동 기반의 명상 공예 실천입니다. 단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준비물
- 실 또는 실처럼 감을 수 있는 선 (실, 털실, 끈 등)
-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조각 3장
- 펜 1자루
1. 감정을 선택합니다.
-
오늘 하루 가장 오래 머문 감정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예: 허전함, 기쁨, 불안, 고요함, 소외감)
2. 그 감정을 종이 조각에 적습니다.
3. 실을 감기 시작합니다.
-
손가락에 감을 수도 있고, 종이 조각에 감아도 됩니다.
-
중요한 건, 당신의 리듬입니다.
-
빠르게, 천천히, 느슨하게, 조이듯
-
실을 감는 속도, 텐션, 횟수는 감정의 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됩니다.
4. 감는 동안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해보세요.
5. 마지막 감긴 실을 바라보며, 종이에 문장 하나를 적습니다.
🧵 확장 방법
이 감정의 실을 작은 통에 넣어 모아보세요.
일주일간 감은 감정의 실들을 나열해보면,
'나'라는 존재의 리듬을 무늬처럼 시각화해볼 수 있을거예요.
혹시 당신의 무늬가 지금까지 누군가가 떠준 실로만 만들어져 왔던 건 아닐까요?
이제, 당신도 스스로 실을 감아볼 차례예요.
그 실은 아직 꼬여 있을 수도 있고 엉뚱한 색으로 얼룩져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중요한 건, 그 실을 당신이 직접 감기 시작했다는 것.
그 순간부터 당신은 당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편집자가 됩니다.
|
|
|
Crafts and Meditation
평화의정원에서는 공예품과 다양한 명상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와 같은 몰입의 경험을 누려보세요.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제품들도 함께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Newsletter
Le Carnet 라는 이름으로 노트나 쪽지처럼 좀 더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작가의 영감과도 같은 작업 노트도 엿볼 수 있습니다.
페이지를 통해 지난 시즌의 뉴스레터도 계속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