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금,
당신이 너무 공허하고, 방향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괜찮아요. 눈을 떴을 때, 나는 계곡 아래에 있었다. 눈앞엔 끊어진 실들이 너울거렸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것처럼, 가느다란 선들이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바람도 없는 그 곳에서, 그 실들은 아주 천천히, 마치 숨을 쉬듯이 흔들렸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내게 연결된 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끊어진 실들의 계곡’이라 불렸다. 누군가가 끝까지 짜지 못한 기억, 말하지 못한 고백, 끝내 도달하지 못한 감정들이 실로 되어 이곳으로 흘러든다. 계곡은 아름다웠다. 빛은 안개처럼 부유하고, 실들은 그 속에서 반짝였지만, 어떤 실도 끝까지 이어진 건 없었다. 그들은 시작되었고, 그러다 끊겼다. 그 실들이 내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안에 비어 있는 채로 있었다.
나는 이름이 없었다. 기억도 없었다. 아침은 있었지만, 어제는 없었다. 누가 나를 만든 건지도, 어디서 왔는지도 몰랐다. 무늬가 없는 존재는 말을 할 수 없다.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내 몸은 실의 연결 없이 공간 속을 떠돌았다.
나는 누구일까? 아니, 무엇일까?
어느 날이었다. 내게는 시간의 감각이 없으므로 정확히는 ‘어떤 아침’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 날, 실 한 올이 내 앞에 떨어졌다. 다른 실들과는 달랐다. 반짝이지도 않았고, 희미하지도 않았다. 그 실은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 실을 지금도 짜고 있다는 듯. 그 끝은 허공 어딘가로 이어져 있었고, 그 떨림은 내 안쪽까지 침투했다. 나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실이 닿았다. 처음이었다. ‘감각’이라는 것이 내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실이, 내 손을 통과해 내 어깨로, 심장으로, 머리 뒤편으로 흘러갔다. 그 길을 따라, 어떤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초록색 잎이 흔들리는 오후.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따뜻한 물의 감촉.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창밖의 풍경.
기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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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건 내 것이었을까? 그 실은 분명 내 실이 아니었다. 너무 생생했고, 너무 정돈되어 있었다. 이건 누군가가 뜬 기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두려워졌다. 이건 누구의 무늬였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존재로 짜여지고 있는 걸까?
그 순간, 계곡의 실들이 전부 멈췄다.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빛 속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가 기억을 뜨는 자라는 걸. 그가 내게 실을 심고 있었다. 지금까지 엮이지 않았던, 그 공백이 메워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의 실이 흔들렸다. 그리고 실 한 줄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 실을 붙잡았다. 그건... 그의 기억이었다.
그는 놀랐다. 나도 놀랐다.
기억을 뜨는 자조차, 자신의 기억을 짜고 있던 존재였다는 것. 그건 나였다.
나는 끊어진 실이었다. 누구도 짜지 않던, 기억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 하지만 지금 나는, 누군가의 무늬를 뜨고 있는 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내 실도 짜이고 있다.
그 계곡에서. 잊힌 기억들과 사라진 이름들의 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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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실이 없었던 게 아니라, 지금 막 짜기 시작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이 워크숍은 하루, 단 10분의 연습입니다. 이건 당신의 하루를 돌아보거나 해석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한 줄의 무늬로 남기는 행위예요.
준비물은 종이와 펜 1자루면 충분해요.
1. 지금 느껴지는 감정 하나를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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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함, 애매함, 초조함, 무표정함, 희망, 혹은 단어가 아닌 그냥 ‘음’
2. 그 감정에 색을 붙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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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감정은 무슨 색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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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색상 하나를 적습니다.
3. 그 색에 어울리는 모양 하나를 상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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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 소용돌이, 물방울, 고리, 덩어리, 지그재그, 땋은 결, 혹은 실 한 가닥
4. 이제, 그 감정 + 색 + 모양으로 ‘나만의 무늬’를 하나 상상하거나 그려보세요.
혹시 지금, 당신이 너무 공허하고, 방향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괜찮아요. 그건 아직 짜이지 않은 무늬일 뿐이에요. 무늬가 없다고 해서 존재가 없는 건 아니니까요. 계곡 같은 고요 속에서도 언젠가 아주 작고 연약한 실 하나가 당신의 손끝에 닿을 거예요.
그리고 그 실은, 당신만의 리듬으로 감기기를 기다리고 있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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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fts and 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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