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억을 만들어내는 실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무늬로 떠지고 있는 실이다.
Prologue
그 어떤 움직임도 없었던 처음. 공기조차 존재하지 않던 공간. 그곳에 빛이 도달했다. 흐르지 않고, 퍼지지 않고, 그저 조용히 ‘도착’했다.
빛은 말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빛이 닿는 곳엔 선 하나가 피어난다. 머리칼보다 얇고, 바람보다 가벼운 선. 그 선이 떨릴 때 실이 되고, 그 실이 엮일 때 무늬가 된다.
그리고 그 무늬를 짜는 자들이 있다.
기억보다 먼저 결을 감지하는 손들. 그들은 실을 뜨고, 기억을 짜고, 하루를 남긴다. 남기지 못한 실은 흘러간다. 기억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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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밤이면 실을 흘린다. 그날 겪은 감정, 삼킨 말, 아무도 몰랐던 눈물 한 방울까지. 그 모든 것이 아주 가느다란 실이 되어 조용히 몸 밖으로 풀려나온다. 그 실들은 땅에 닿기 전, 한 존재의 손에 닿는다. 보이지 않고, 이름도 없고, 감정도 없는 존재. 그는 실을 엮는다. 무늬를 만든다. 그리고 그 무늬는 '기억'이 된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며 그가 떠준 무늬를 '어제의 나'라고 믿는다. 기억을 뜨는 자. 그는 늘 그 역할을 해왔다. 누구의 실이든 받아들였고, 충실히 엮었다. 그에게 실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것이었고, 그는 오직 그것을 감지하고, 연결하고, 남기는 자였다.
그러던 어느 밤, 한 존재의 실이 풀리지 않았다. 그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실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기억을 뜨지 못하면, 그 존재는 아무런 기억도 없는 채로 아침을 맞게 된다. 당황한 그는, 다른 이의 실을 몰래 가져다 엮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존재는 자신이 아닌 기억을 입고 눈을 떴다. 놀라운 건, 그가 불편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익숙했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맞는 옷을 입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실을 바꾸어보기 시작했다. 이 사람의 분노에, 저 사람의 용서를 섞고, 낡은 기억 위에 새로운 감정을 더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더 과감해졌다. 그는 이제 단순히 기억을 짜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루를 재구성하는 손이 되어 있었다. 마치 사람을 다시 짜는 것처럼.
어느 밤, 그의 손끝에 이상한 실이 걸렸다. 누구의 것도 아닌 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결. 무늬 없는 색. 기억되지 않은 떨림. 그는 처음에 몰랐다. 그 실이 자신의 것이라는 걸.
그는 실이 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손끝에 있는 실은, 그 자신이 흘려낸 것이었다. 그의 손이 멈췄다. 주변의 실들이 흔들렸다. 그동안 떠온 수많은 기억들이, 정말 모두 타인의 것이었을까? 그는 손끝을 더듬는다. 그 실은 지금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그 떨림은 전한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그를 뜨고 있다는 감각. 그는 고개를 든다. 눈에 보이지 않던 또 다른 존재가 있다. 그는 그 존재의 실로 짜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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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는 실을 짜는 자들이 있다.
기억을 뜨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떠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자는 드물다.
그는 이제 안다. 모든 무늬는 연결되어 있고, 어떤 존재도 실의 시작이 될 수 없으며, 모든 뜨개질은 결국 또 하나의 기억이 된다는 것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실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기억은 우리를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을 만들어내는 실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무늬로 떠지고 있는 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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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습은 당신이 익숙하게 믿고 있는 기억의 무늬를 다시 감아보는 시간입니다.
1. 지금, 가장 자주 떠오르는 기억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2. 그 기억을 구성하는 이미지, 말, 감정 중
3. 이제, 그 기억을 실로 상상해봅니다.
4. 이 실을 누군가가 엮어주고 있다면, 그 존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 당신의 부모인가요?
- 오래 전 알던 누군가인가요?
- 혹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인가요?
어떤 무늬는
다 짜이고 나서야
누구의 실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지금 당신을 가장 강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기억은, 당신이 만든 실인가요?
🧶아니면 누군가가 떠준 무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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