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뜨개질하기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뜨개질을 하지 않았다. 손끝에서 실이 미끄러지는 감각, 바늘에 코를 하나씩 걸어가는 리듬, 차분히 쌓여가는 무늬들. 뜨개질은 언제나 나를 안정시켜 주었지만, 올겨울 나는 한 번도 코를 만들지 못했다. 올겨울은 그 온도만큼 마음도 추웠다. 쓸쓸했고 황량하기까지 했다.
새해 인사는 몇몇 친구들과 가족에게만 했다. 연례 행사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던 그 흔한 인사조차 오가는 일이 드물었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했고, 나는 밤새 점멸하는 스크린 속에서 끝없는 소음을 들었다. 나의 일상은 조금씩 무너져 가는 듯했다. 금방 회복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무기력함이 서서히 나를 짓눌렀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뭐라도 해야 할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손을 움직이면, 실을 잡으면 마음이 가라앉았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손끝이 멈췄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풀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단단하게 엉켜 가는 기분이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시간 속에 나는 조금씩 갇혀 갔다. 매서운 바람이 불 때마다 내 안의 온기도 함께 얼어붙어 갔다. 서랍 속에 방치된 실 꾸러미들은 점점 더 깊숙이 묻혀 갔다. 새해가 되면 호기롭게 내세우던 결심 같은 것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고 여겨졌고, 나는 스스로 초라함에 몸부림쳤다. 이따금씩 마음을 다잡고 코바늘을 손에 쥐고 실 한 올을 빼내어도 끝끝내 첫 코를 끼우지 못했다. 손끝에 걸리는 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는 검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곧 지나갈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겨울도 언제나처럼 끝이 날 것이다. 모든 것은 흐르고, 지나가고, 또다시 찾아온다. 지나가는 것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려서는 안 된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나무도 조금씩 생기를 되찾는다. 겨울의 침묵을 지나, 다시 피어나려나 보다. 손끝에 남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실 한 올을 당긴다. 어딘가 어색해진 손놀림이 낯설다. 첫 코를 잡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처음 코를 만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손끝에서 이어지는 실은 나를 차분하게 하고, 나를 이끄는 힘이 된다.
시작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첫 코를 만들고 나면 마치 이미 길이 정해져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계절이 그러하듯 나도 새로워질 준비를 한다. 긴 겨울의 침묵을 깨고 다시 파릇파릇해지기 위해 웅크린 몸을 펴고 고개를 들어 올린다.
박스 속에 묻혀 있던 실을 꺼내 펼쳐 본다. 손끝에 와닿는 질감이 낯설다. 이 실들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을까? 하나씩 정리하며 내 마음도 함께 정리한다.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잠시 중정에 나가 보았다. 지난 초가을에 사둔 화분에서 아주 작은 이파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변화는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새로운 시작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부터 자라고, 어느 순간 문득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긴 터널을 지나 조금씩 밝아진다. 언제나 있었을 그 빛을 향해 조금씩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