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 Much Thinking
어릴 때의 나는 아마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뭔가를 하기 전에 그렇게 많은 회의를 열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어떤 맛일까. 이건 어떤 냄새일까. 이걸 만지면 무슨 느낌일까. 저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궁금하면 일단 손을 뻗고, 냄새를 맡고, 입에 넣어보고, 으엑 하고 뱉어냈을지도 모른다. 물론 꽤 자주 혼났을 것이다. 먹는 거 아니야. 만지는 거 아니야. 그거 내려놔. 그런데 그 말들을 듣기 전까지는, 세상은 전부 가능한 것들로 이루어진 놀이터였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하루에 실패라는 건 없다. 먼저 오는 것은 호기심이다. 그다음에는 손이다. 그리고 아주 뒤늦게 어른들의 말이 온다. 그러면 안 돼. 그렇게 하면 안 돼. 그건 틀렸어. 하지만 그 짧은 틈, 아직 안 된다는 말이 도착하기 전의 그 몇 초 안에서 아이들은 이미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종이 상자는 집이 되고, 천 조각은 망토가 되고, 실 한 가닥은 길이 된다. 돌멩이는 보물이 되고, 나뭇가지는 검이 되고, 방바닥은 바다가 된다. 대단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다. 그때는 상상으로 가득했고, 설명은 딱히 필요 없었으니까.
지금의 나는 어린아이처럼 살 수 없다. 해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것도, 어른인 척해야 하는 순간도 많다. 심지어 어른인 척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가끔은 진짜 어른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일정표를 확인하고, 마감일을 계산하고, 비용을 정리하고, 결과물을 예측한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실수하고 싶지 않다. 이왕이면 멋있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까지 하고 싶다. 정말 피곤한 패키지다.
Make It Messy
작업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완벽하게 하려고 할수록 손은 점점 느려진다. 머릿속에는 이미 멋진 장면이 있는데, 실제 손끝에서는 자꾸만 다른 모양이 나온다. 선은 삐뚤어지고, 실은 엉키고, 색은 예상과 다르고, 재료는 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멈추게 된다. 이게 아닌데.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어쩌면 바로 그 순간부터 작업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순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모양이 슬쩍 고개를 내미는 순간. 이상하게도 작업은 늘 그 틈에서 시작된다.
완벽한 것은 종종 너무 조용하다. 흠잡을 데 없이 정리된 것들은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조금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반대로 조금 삐뚤고, 조금 어긋나고, 조금 이상한 것들은 묘하게 오래 눈에 남는다. 손으로 만든 것에는 손의 속도가 남고, 망설임이 남고, 실수의 방향이 남는다. 바늘이 잠깐 흔들린 자리, 실이 예상보다 세게 당겨진 자리, 마음이 급해서 생긴 작은 틈. 그런 것들은 결점처럼 보이지만, 나의 감정과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완벽하지 않은 덕분에 사람 같다. 내 작업도 그렇고, 나도 뭐 그렇다. 완벽하지 않다. 꽤 자주 엉망이다.
이번에는 잘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조금 놀아보고 싶었다. 결과를 정해놓고 거기로 달려가는 대신, 재료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보고 싶었다. 실을 꺼내고, 펼쳐놓고, 만져보고, 이리저리 조합해본다. 이 색 옆에 저 색을 두면 어떨까. 이 텍스처와 저 텍스처가 만나면 어떤 표정이 생길까. 이건 너무 이상한가. 그런데 이상하면 또 어떤가. 어차피 오늘의 목표는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노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잘하려는 사람 말고, 궁금해하는 사람. 결과를 증명하려는 사람 말고, 손끝으로 질문하는 사람.
어린아이들은 대체로 대책이 없다. 갑자기 뛰고, 갑자기 웃고, 갑자기 운다. 마음이 몸보다 먼저 튀어나오고, 몸은 생각보다 먼저 움직인다. 가끔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산만하고, 너무 막무가내다. 그런데 그 안에는 묘한 생명력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붙어 있는 힘. 방금 전까지 울다가도, 바닥에 떨어진 작은 조각 하나를 보고 금세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능력. 나는 그게 부럽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한 가지 감정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일이기도 하니까. 걱정이 오면 걱정에 오래 머물고, 실패가 오면 실패에 오래 머문다. 아이들은 넘어져도 금방 다른 걸 본다. 물론 무릎은 까졌겠지. 그러다가 별안간 “어, 저기 개미 지나간다.”
나는 오늘 조금 그렇게 작업해보고 싶다. 망치면 망친 대로, 엉키면 엉킨 대로, 이상하면 이상한 대로. 마구 휘저어 놓고, 갑자기 멈춰 서서 바라보고, 다시 손을 뻗고, 또 엉뚱한 방향으로 가보고 싶다. 완성이라는 단어를 잠깐 뒤로 밀어두고. 어쩌면 작업은 늘 그런 것이었다. 완성된 결과물만 보면 단단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장난과 실패와 혼잣말이 들어 있다.
이거 아닌데. 아니, 괜찮은데? 잠깐만, 이거 좀 좋은데?
하하하. 나 천재인가 봐.
물론 천재는 아닐 것이다. 대체로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하나의 재료로 써보고 싶다. 어릴 때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줄 알았고, 내가 만든 종이배가 정말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증명해주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충분히 믿었다.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증거를 요구한다. 이게 의미가 있나. 이게 팔릴까. 이게 나다운가. 이게 알고리즘을 탈까?
오늘은 조금 덜 묻기로 한다. 이게 맞는지 묻기 전에 만져보기로, 쓸모가 있는지 따지기 전에 엮어보기로, 예쁜지 판단하기 전에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작업은 가끔 답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잘될 거라는 확신이 아니라, 해보고 싶다는 작은 충동. 그 충동을 너무 빨리 검열하지 않는 것.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첫 번째 움직임을 너무 빨리 지우지 않는 것. 창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아주 작고, 어설프고,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마음을 일단 살려두는 일.
Play Like a Child
놀이는 시간을 다르게 흐르게 만든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결과를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 시간은 빨리 소모된다. 하지만 놀이가 되는 순간 시간은 늘어난다. 손은 계속 움직이는데, 시계는 잠깐 멀어진다. 지금 내가 몇 시까지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보다, 이 실이 어디까지 이어질지가 더 궁금해진다. 그때 몸은 조금 가벼워진다. 마음도 조금 조용해진다. 명상이라는 게 꼭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일만은 아닐 거다. 어떤 순간에는 실을 잡는 일, 색을 고르는 일, 손끝의 리듬을 따라가는 일도 명상이 된다. 생각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생각이 손의 속도를 따라 천천히 가라앉기 때문에.
나는 공예가 그런 시간을 만든다고 믿는다. 아주 느리고, 반복적이고, 때로는 지루할 만큼 단순한 움직임. 그런데 그 반복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정리된다. 흩어진 생각들이 한 코 한 코 걸리고, 불안은 손끝의 리듬 안에서 잠시 방향을 잃는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불안과 걱정을 완전히 치우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을 움직여보는 거니까.
어린아이처럼 논다는 것은 걱정이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아니다. 그것은 불안이 없던 시절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불안이 생긴 이후에도 다시 호기심을 선택하는 일이다. 나는 이제 걱정을 모르는 아이가 될 수 없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고, 너무 많은 것을 계산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선택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걱정보다 재료를 먼저 볼 것인지. 결과보다 감촉을 먼저 믿을 것인지. 실패보다 호기심을 먼저 꺼내놓을 것인지.
작업대 위는 조금씩 엉망이 된다. 실은 풀리고, 재료는 흩어지고, 손은 바빠진다. 처음의 계획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처음보다 편하다. 정리되지 않은 풍경 안에서,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작업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 굳어 있던 감각을 깨우고, 너무 조심스러워진 손을 풀어주고, 잘해야 한다는 문장 아래 눌려 있던 장난기를 꺼내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순간이 좋다. 아직 이름이 없는 상태. 완성도 아니고 실패도 아닌 중간의 상태. 무엇이 될지 몰라서 불안하지만, 바로 그래서 조금 설레는 상태. 이건 뭘까. 이건 어디로 갈까. 이걸 계속하면 어떤 모양이 생길까. 어릴 때의 나는 아마 매일 이런 질문 안에서 살았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질문들을 너무 빨리 닫아버린다. 답이 나오지 않으면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멈춰버린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기다려보고 싶다. 아직 모르는 것들을 모르는 채로 두고, 그 옆에서 손을 움직여보고 싶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어린 시절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바닥에 떨어진 실 조각 하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실패한 모양을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바라보는 여유.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 앞에서 곧장 실망하기보다, 여기에는 어떤 가능성이 숨어 있지 하고 묻는 태도. 어린아이들은 세상을 그렇게 본다. 완성된 의미로 보지 않고, 아직 열려 있는 가능성으로 본다. 그래서 아이들의 놀이는 자주 엉망이지만, 동시에 자유롭다.
오늘의 작업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 거다. 아마 삐뚤 것이고, 예상과 다를 것이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괜찮다. 오늘은 완벽해지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니까. 오늘은 다시 놀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너무 어른처럼 굳어버린 마음을 조금 풀어놓고, 손끝에 남아 있는 작은 호기심을 따라가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그러니 조금 망쳐도 괜찮다. 조금 이상해도 괜찮다. 조금 유치해도 괜찮다.
나는 오늘, 어린아이처럼 만들고 싶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철부지 망아지 마냥, 조금 헤집어놓고 조금 망쳐보면서. 그리고 마음에 드는 순간이 하나라도 나타나면, 아주 뻔뻔하게 말해보고 싶다.
허, 나 천재인가 봐.
암전. 그래도 괜찮다. 오늘은 세상의 허락보다 내 손의 움직임이 먼저인 날이니까. 설명보다 감각이 먼저인 날이고, 결과보다 놀이가 먼저인 날이다.
지금 내게는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 그런 하루가 필요하다. 다시 잘하려는 사람이 되기 전에, 다시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는 시간. 완성된 나를 증명하려 하기 전에, 아직 만들어지는 중인 나를 바라보는 시간. 걱정과 불안이 앞을 막아서더라도, 그 사이로 실 한 가닥을 통과시켜보는 시간. 아주 작고, 가볍고, 천진난만한 시간.
오늘 나는 그 시간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이 엉망진창의 작업대 앞에서, 조용히 다시 시작해본다.
어린아이처럼,
놀듯이.